'자소설·스펙쌓기'…취준생만 탓할 수 있나요

신입사원

'신입사원 모집 공고'
4년제 대졸 이상, 토익 850점 이상, 공인자격증 취득자 우대. 우리 회사와 함께 성장할 인재를 찾습니다.

대기업의 전형적인 신입사원 공고 형태다. 각 회사가 제시한 학력, 어학성적, 학점 등 '정량적 평가 기준'이 입사원서를 낼 수 있는 기본조건이다.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어야 하고 병역 의무를 마치거나 면제를 받아야 하는 것도 기업마다 내세우는 공통 요건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요구하는 회사의 경우엔 응시자의 학부 전공을 이공계와 상경계, 인문계 구분을 해 놓는 정도다.


이 조건을 만족하면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은 일단 원서를 낼 수 있다. 원서를 내는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면접 볼 기회을 얻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기업 신입사원 취업 경쟁률은 32.3:1. 100명이 지원했을 때 16명 정도가 면접에 가고, 3명 정도가 월급봉투를 거머쥘 수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대체로 제조업 기반이기에 그마나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이 세자리 중 한자리도 차지 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취준생들은 원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경력 한줄이라도 더 넣어야 내 자신을 남보다 돋보일 수 있다. 헤어와 메이크업으로 공들인 증명사진은 물론 제2외국어 , 컴퓨터 자격증, 금융상담 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도 쌓는다. 해외연수나 인턴경험은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하기 위한 경험이 아닌, 취업을 위한 조건이 된 지 오래다.


물론 인사담당자들은 이러한 스펙이 채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스펙과 업무능력을 비례하지 않는다고도 하고, 업무에 대한 적성과 열정이 있는 '가능성'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듣는 취준생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채용공고에서 명확한 직군에 대한 정보나 조건이 명시되지 않은 채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써야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취준생인 이모씨(27·여)는 "자기소개서 항목이나 인적사항과 학력, 자격증을 작성하는 이력서가 모두 공통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더 튀는 경험을 했고, 어떤 객관적인 능력이 있느냐를 중점적으로 쓰게 된다"며 "직무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직무와 관련된 기본 요건을 세세하게 공개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나를 돋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자격증, 공모전 등 스펙쌓기를 타의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을 어렵게 들어갔다 1년 만에 퇴사한 박모씨(30)는 "기업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을 뽑고 싶어하지만 정작 내가 그 일에 맞는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며 "그러다 보니 웬만한 대기업에는 직무나 직군에 상관없이 온갖 자격증과 어학성적을 나열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사 전문가들은 무작정 스펙을 쌓는 현 실태가 꼭 취준생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인사 컨설팅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신입생 공고 대부분은 학력, 어학성적 등 간단한 요건만 제시하고 자소서 항목도 직군에 상관없이 다 공통적으로 제시한다"며 "그 회사나 직군에 적합한 요건이나 직무능력을 알기가 어렵다보니 스펙쌓기를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채용방식은 외국계 기업이나 해외 채용방식하고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명 외국계 기업의 경우 직무를 구분하고 그 직무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제공한다"며 "직무에 필요한 교육, 경험 등도 비교적 자세하게 명시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자신에게 적합한지를 우선 판단할 수 있고 자기소개서도 그 직무와 연관된 부분을 강조해 A4 한장 정도로 간단히 작성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외국계 기업이 내놓은 신입사원 공고를 살펴본 결과, 직무에 맞춘 교육과 관련 경험이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예를 들어 홍보 관련 직무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경우 △홍보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하거나 △관련 업계 인턴 경험이 있고 △신문방송학 등 홍보관련 학과를 졸업한 경우 등을 우대한다고 A4용지의 1/3에 거쳐 상세하게 명시했다.

이력서와 자소서는 별도의 형식 제한 없이 응시생이 원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제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신입사원을 한두명을 뽑는게 아니고 일괄적으로 많은 수를 뽑다보니 세세하게 요건에 맞는 자소서를 일일이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또한 매해 임원진들이 원하는 인재상이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직무보다는 학벌, 인성 등에 더 초점을 맞춰서 뽑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