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로봇 설계, 유독 韓에서만 중요한 원칙 있다는데

공경철 교수팀이 사이배슬론 대회 3위에 오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서강대

19일 오후 서강대 기계공학과 RA313호실, 공경철 교수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머리를 연신 쓸어 올리며 실험실 안을 서성이던 공 교수. 한참을 고민하다 누군가와 급히 통화한다. “택배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옮기지 못하겠다고 하니까. 너희가 얼른 가봐라.”


이날 스위스에서 열린 인간보조로봇 국제대회 ‘사이배슬론’에 참여했던 한국 대표팀 로봇 ‘워크온’이 국내로 옮겨졌다. 로봇(20kg)을 포함, 4개 박스에 나눠 담긴 각종 수리용 공구와 거치대를 합치면 그 무게는 100kg을 훌쩍 넘긴다. 이를 택배로 옮기려 했으니 택배기사가 뿔날만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기자의 머릿속엔 미국 재난 로봇 경진대회(DARPA 로봇공학 챌린지)에서 로봇 ‘휴보’로 우승한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팀의 일화가 오버랩 됐다. 전문 운송팀을 부를 돈이 없어 학생들이 로봇의 전 부품을 뽁뽁이(에어캡)로 직접 박스 포장했다는 에피소드다.

공경철 교수 연구팀, SG메카트로닉스, 세브란스재활병원 나동욱 교수팀으로 이뤄진 공동연구팀이 지난 8일 사이배슬론 ‘엑소레이스(외골격 착용 로봇)’ 종목에서 독일,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일명 ‘아이언맨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엑소레이스 종목은 척수 손상으로 마비된 장애인이 로봇을 착용하고 장애물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기, 20도 경사 오르막 오르기 등의 과제에 도전하는 종목이다. 공교수팀은 유일한 한국팀으로 출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경철 교수 연구팀, SG메카트로닉스, 세브란스재활병원이 공동으로 제작한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사진=서강대

◇‘회사 명운’ 걸린 대회=공 교수는 대회 신청서를 낸 다음 날부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는 영국 공영방송 BBC, 대회 홈페이지, 유튜브 등의 인터넷TV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홈페이지로 이 대회를 지켜본 전세계 시청자가 약 1억명.


만일 ‘워크온’을 입고 출전한 하반신 마비 장애인 선수 김병옥(42)씨가 넘어져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간의 연구성과가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하루 아침에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부담이 그를 억눌렀다. 공교수는 SG메카트로닉스의 공동창업자로 현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다. 대학 연구소 차원에선 기술 상용화에 한계가 있어 이 회사를 차렸다.

“로봇을 입은 선수가 넘어져 큰 부상이라도 입게 된다면 SG메카트로닉스는 앞으로 어떤 투자도 못 받아요. 이뿐 아니라 대한민국 로봇 기술이 형편없다는 비아냥에 시달릴 거예요. 그래서 사활을 걸었죠.”

특히 SG메카트로닉스 CEO(최고경영자)인 김혁배 씨가 개인 빚을 내 출전한 대회였던 만큼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욱 컸다. “정부 지원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예요. 하지만 저희처럼 작은 규모의 연구조직은 많아야 5000만원, 받게 되면 분기별로 보고서도 써야 하고, 그러면 연구에 전념하기 힘들어지니까 포기했죠.”

공경철 교수/사진=류준영 기자

◇“R&D 개발비지원보다 필요한 건 장애 편견 극복”=함께 출전한 경쟁자들의 실력은 쟁쟁했다. 2등을 차지한 미국 인간기계연구소(IHMC)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는 곳이다. 자금력·인력·첨단설계력 등 대회 우승에 필요한 3박자를 고루 갖췄다. 경기 하루 전 리허설 때 이들 팀을 만난 공 교수의 느낌은 한줄로 요약된다. “월드컵 개막식 1차전때 홈팀을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공 교수팀은 로봇 분야를 12년 간 연구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등에 오른 비결을 묻자 “양학선(한국 체조 역사상 첫 금메달리스트) 같은 헝그리 정신”라고 짧게 답하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부탁하는 말이 있다. “그거 아세요. 웨어러블 로봇 디자인 원칙 가운데 유독 한국에서만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항목이 있다는 것. ‘마치 옷을 입은 것처럼 밖으로 티 나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로봇을 입고 밖을 나가보세요. 사람들이 몰려와 측은한 눈빛으로 볼까 봐 마음 편히 다닐 수 있겠습니까. 웨어러블 로봇 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결할 문제는 정부의 R&D(연구·개발) 지원보다 아직도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장애에 대한 편견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