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前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청담동 주식부자

스포츠카 등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이희진./인터넷 블로그 캡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1988년 10월15일. 지강헌씨(당시 나이 35세)와 그 일당은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 교도소로 이감하던 중 탈주해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지씨는 556만원을 훔쳐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은 죄수였습니다. 당시 사회보호법에 따라 상습 범죄자는 형량을 마치더라도 일정기한 동안 보호감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새마을운동본부 공금 76억원을 횡령한 혐의였는데 지씨보다 낮은 형량을 받은 것이죠. 전씨는 고작 3년여를 감옥에 있다가 가석방됐습니다.

인질극 도중 일당 중 한 명인 강영일씨(당시 21세)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전제가 필수인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거악(巨惡)입니다.

28년이 지난 2016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걱정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 한 사례가 자본시장을 교란한 혐의로 쇠고랑을 찬 '청담동 주식부자' 사건입니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0)은 '전관' 출신 변호사와 대형 로펌 변호사 등 화려한 면면의 변호인단을 구성했습니다.

법무법인 광장이 10명의 변호인단을 투입해 이씨 변호를 맡고 있습니다. 이씨는 검찰단계에서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고용했습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포진한 호화 라인업입니다. 변호사 수임료는 많게는 수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변호인단에는 사건을 처음 배당받았던 남부지법 형사12합의부 최의호 부장판사와 학연 등이 있는 인물들이 포함됐습니다. 법원이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재판부를 변경할 정도였습니다.

서울남부지검은 추징보전으로 이씨가 재산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묶었습니다. 그렇다면 변호사 비용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이씨는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 이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운영하던 회사 미라클인베스트먼트의 사내 변호사가 여러 법리적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씨는 구속되기 전인 8월 미라클인베스트먼트의 대표를 본부장이던 김모씨(26)로 바꿔놨습니다. 이 회사는 추징보전 대상에서도 제외됐습니다.

미라클인베스트먼트는 이씨 구속 이후에도 정상 영업 중입니다. '퀀트스탁'으로 이름을 바꿔서 인터넷 증권방송도 진행합니다.

이희진의 화려한 변호인단 구성을 보도한 본지 기사가 나가자 많은 독자들이 우려했습니다. 재산을 묶어놓은 검찰을 비웃듯 몸값 비싼 변호인단을 꾸린데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또 한번 반복되지 않을까 재판 결과를 주목하는 눈이 많습니다.

이희진피해자 모임 회원 A씨는 "이씨는 처음부터 이 상황을 준비한 것 같다"며 "변호사 비용도 결국 피해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일 것 같은데 피 같은 피해자들 돈이 이씨를 변호 하는데 쓰여서 더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