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나온 여자' 자존심 건드린 세 가지 사건

'최순실 딸 특혜 의혹' 등과 관련해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본관 앞에서 학생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화여대 사태가 최경희 총장의 사퇴로 일단락되는 듯 합니다. 학생들은 80일 넘게 지속했던 본관 점거 농성했던 풀었습니다. 총장 사퇴 촉구 시위를 기획했던 교수협의회도 "차기 총장을 민주적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로 집회를 마무리했습니다.

보수적이라던 이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몇년 간 취재하며 지켜본 이대는 유달리 변화가 더딘 대학이었습니다. 건학 이념에 따라 채플 수업이 필수이수 과목으로 지정돼 철저히 운영되고 있었고, 불과 2년전까지 국내 4년제 여자대학 중 유일하게 총장 자격이 '여성'으로 한정됐던 곳입니다. 입학 관리에도 신중해 연예인이 특혜로 들어갈 수 없는 대학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전통에 대한 고집이 "이대나온 여자"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는 데도 일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깨졌습니다.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 학내 경찰 투입, 정유라씨 특혜 의혹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대생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힘들게 따는 졸업장을 직장인에게까지 내주겠다던 총장의 무리한 행보가 학생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단초였습니다. 이 때만 해도 일부에서는 이대생의 농성을 "평생교육 수준이 턱없이 낮은 우리나라의 현실은 생각지 않은 채 '명문대 자부심'에 빠져서 저지른 불장난" 정도로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본관 점거를 풀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고, 비선 실세의 자녀가 온갖 의혹에 휘말렸는데도 "특혜는 없었다"고 선 긋는 이대의 모습은 이대생뿐만 아니라 전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입학, 재학 과정에서 상식 밖의 편의를 제공받은 정황이 공개될 때마다 이대는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관련기사: [단독]출석은 문자, 과제는 인증샷으로…정유라식 학점취득법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뒤켠에는 학교 관계자의 독단이 자리한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됐습니다.

결국 최경희 총장은 물러났습니다. 혹자는 "80일 넘게 버티던 최 총장이 물러난 결정적 이유는 학생과 교수의 농성이 아니라 이사회의 압박"이라며 그간의 성과를 회의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한 입시계 인사는 "이번 사태로 이화여대 프리미엄이 떨어졌으며 앞으로 예전의 명성을 되찾긴 힘들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저 역시 이런 생각에 일면 동의합니다. 이대 재학생과 동문들은 오랜 농성 기간동안 각종 의혹에 시달리며 알몸으로 신촌 거리에 서는 부끄러움을 경험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은 자정 노력이 학교 구성원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총장 사퇴는 농성의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이자 이대생들이 그간 무너진 자존심을 세울 발로가 될 것 입니다.

학생들이 정말 학교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포스트(Post) 최경희'에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유라씨의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실 규명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대생들, 아직은 축배를 들기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