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부검영장 D-2…'강제집행' '재신청' 고민 깊어진 경찰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고 백남기 측 유족과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씨의 부검영장 강제집행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16.10.23/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경찰이 23일 고 백남기씨의 부검영장을 집행하려 서울대병원을 찾았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유족이 강제집행을 원하지 않기에 그 뜻을 존중해 오늘은 철수한다"며 대치 3시간 20분여만에 병력을 모두 철수했다.

경찰의 향후 선택지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부검영장 효력 만료시점(25일)이 코 앞으로 다가온 만큼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하며 영장을 강제집행할 것이라는 관측과 결국 시한을 넘겨 영장을 재신청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경찰은 "일단 오늘은 돌아간다"며 내일과 모레 부검영장 집행 가능성을 열어놨다. 아직 남아있는 충돌 가능성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또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오전 10시 병력 끌고 온 경찰…"유족 뜻 따라 철수"

23일 오전 9시40분쯤 백남기 투쟁본부 측에 일순 비상이 걸렸다. 투쟁본부는 "경찰이 오전 10시 부검영장을 집행한다고 알려왔다. 시민들은 지금 즉시 장례식장으로 집결을 부탁드린다"며 다급하게 밝혔다.


오전 10시쯤 경찰이 9개 중대 8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홍완선 종로경찰서장 등 경찰지휘부는 유족 측과 만나려 했으나 장례식장 앞을 지키고 있는 시민 100여명 등에 가로막혔다.

백남기씨 유족 측 법률대리인단장 이정일 변호사 등은 병원입구 근처에서 홍 서장 등과 대면했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유족들과 협의 후 영장집행을 하겠다"며 "장례식장 내 장소에서 협의를 하고 싶다"며 의사를 전달했다. 유족 측 대리인들은 "경찰이 장례식장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협의 장소는 유족과 논의해보겠다"고 답했다. 이후 한동안 협의 장소를 두고 양측의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경찰은 "장례식장이 아니면 직접 따로 병원에 문의해 장소를 알아보겠다"며 재차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유족 측은 논의 끝에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다. 조용히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돌아가달라"며 맞섰다. 서로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경찰과 유족 측 법률대리인들은 장례식장에서 수십미터 떨어진 천막에서 비공개 논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유족 측이 원하지 않으면 부검영장을 오늘은 집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최종 전달했다.

경찰의 병력 철회는 그렇게 이뤄졌다. 유족들은 완강했다. 홍 서장은 병력 철회 직전인 오후 1시15분쯤 "법률대리인과 얘기한대로 병력을 철회하는 것"이라고 이유를 짤막하게 밝혔다.

◇빈손으로 돌아간 경찰, 명분 쌓나

경찰이 돌아간 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모인 유족 측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당연한 일"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날 순순히 돌아간 경찰의 모습을 여러 갈래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우선 유족 측은 오늘 경찰 투입이 '명분쌓기용'이라고 보고 있다. 대화 시도를 계속 한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면서 영장 강제집행에 명분을 쌓는다는 것이다. 백씨의 딸 백도라지씨는 "경찰에서 자꾸 가족을 만나자고 하는데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고 장례도 못 치르는 데 경찰을 만나고 싶겠느냐"며 "(이번 경찰 부검영장 집행 시도는) 명분쌓기에 불과하고 꼼수일 뿐이다. 더이상 가족들을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경찰은 그동안 유족 측에 보낸 협조 공문과 경찰의 방문 시도 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홍 서장은 "그간 6차례에 걸친 협조 공문, 3차례에 걸친 경찰 관계자 방문에도 유족 측은 한번도 만날 수 없었다"면서 "유족이 직접 부검과 관련한 의사를 경찰 측에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언급은 경찰이 유족 측 법률대리인과 만난 자리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서장은 앞서 13일 백남기씨의 빈소를 직접 찾아 유족 측에게 부검협의를 설득하기도 했다. 17일에는 장경석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장이 빈소를 방문해 부검영장 협조를 요청했다. 유족 측은 이때마다 "백씨의 사망과 관련 일체의 유감이라는 뜻이나 표현은 없었다"며 "지극히 형식적인 절차로 충분한 협의했다는 영장집행 이행조건에 대한 명분 쌓기 방문"이라며 영장집행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결국 유족들의 반대에도 이처럼 경찰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 이유는 부검영장 효력 만료 시점인 25일 전으로 물리력 행사 등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우선 25일까지 부검영장 집행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홍 서장은 "오늘은 돌아가지만 내일과 내일 모레 다시 영장을 집행할지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충분한 명분을 쌓았다곤 하지만 여론상 쉽게 강제집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부검영장을 발부하며 법원이 '유족 측과의 협의' 등을 전제조건으로 단 만큼 강제집행 시 논란이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만약 25일을 넘긴다면 경찰이 영장을 재신청할지도 관심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병사와 부검에 대한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부검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는 않아 보인다"며 "법원의 조건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결국 강제집행을 못하고 시한을 넘길 수도 있지만, 만약 재신청을 하게 되더라도 그만한 사유와 소명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로서는 큰 딜레마에 빠져있다"라고 분석했다.

백남기투쟁본부 측은 25일까지 장례식장을 지키는데 총력전을 펼칠 예정이다. 투쟁본부 측은 "계속 말이 달라지고 있는 경찰 태도를 믿을 수 없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치고 들어올 지 알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25일까지 모든 노력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집행을 막겠다.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한다"라고 밝혔다.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왼쪽 두번째)과 백남기 유족 측 대리인들이 부검영장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다. 2016.10.23/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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