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움찔'…길 가기가 무섭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회사원 김모씨(32·여)는 음식점에서 밥이나 술을 먹을때 화장실을 잘 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화장실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강남살인사건 이후에는 화장실을 꼭 가야할 경우가 생기면 회사동료들과 함께 간다.


#178㎝, 75㎏으로 비교적 건장한 체격인 박모씨(34)는 요즘 길에서 모르는 누군가 다가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이 움츠러든다. 호객행위를 하거나 길을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박씨의 불안감은 계속된다. 최근 들어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자신도 그런 대상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범죄 양상이 점차 개인화되고 폭력성도 심화되는 만큼 범죄 발생 원인을 면밀하게 진단하고 범죄예방을 위한 당국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이러니하게 우리나라의 살인사건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5년 미수, 교사 등을 포함한 살인사건 건수는 1066건이었던 것에 비해 2014년 살인사건 건수는 938건이었다. 2009년 1390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해서 줄어 들었다. 실제로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도 감소했다. 2005년 512건이었던 살인건수는 점차 줄어 2014년엔 366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강력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재산문제, 치정, 금전관계 등 전통적 범죄 형식을 크게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는 "예전보다 사람들이 강력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내가 술을 먹지 않고, 일찍 퇴근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범죄를 막기 위해선 범죄 유형을 면밀히 분석하고 범죄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단 범죄를 분석하는 용어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자행하는 폭력이나 살인을 '묻지마 범죄'로 불렀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으로 모든 범죄를 일컫는 이 용어가 범죄의 동기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흔히 이러한 범죄는 '무동기 범죄', '혐오범죄', '외로운늑대형 테러' 등으로 나뉜다. 무동기범죄는 범죄자의 동기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붙여진다. 대체로 범행의 목적이 불분명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혐오범죄는 인종, 성, 성적 취향등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범죄가 일어난다. 역사적으로는 유태인 학살, 가까운 예론 강남역 살인사건을 들 수 있다.

외로운 늑대형 테러는 반사회적인 동기가 크다. 공권력이나 현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을 범죄로 표출하는 경우다. 이 범죄는 치밀한 계획을 통해서 준비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려고 하는 욕구가 강하다. 지난 19일 강북 번동에서 경찰을 사제총으로 살해한 성병대씨(45)의 사례를 들기도 한다.

'오패산터널 총격전'에서 이용된 총기/사진=뉴스1

이 교수는 "성씨가 경찰을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권력이라는 하나의 사회체제를 공격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며 "단순한 혐오를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도 "성씨가 사회적 주목을 받고 싶어하고 자신만의 논리로 정의를 실현시키겠다는 생각이 공격적으로 나타나 완전한 테러는 아니지만 테러형 범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이같은 범죄를 벌이는데 있어 개인의 가정환경, 경제적 상황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국형사학회가 2012년 '이상범죄'로 보고된 48건의 범죄에 대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범죄자들의 절반 이상은 혼자 거주하고 있었고, 4명 중 3명은 직업이 없었다. 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는 35명으로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이전에 전과가 있는 경우도 75%에 달했다.

이 한국테러학회장은 "혐오범죄나 테러형 범죄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분노를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원인을 개인의 상태로 치부하기 보단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제총, 수제폭탄 등 무기 제조를 통한 범죄가 발생한 만큼 이를 감시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성씨 사건 이후 유사한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성씨가 범죄 전 '테러', '무기'등 관련어 검색을 했던 만큼 인터넷을 통한 예방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