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허리 숙인 24명의 '롯데맨'..."외형성장 치중 않겠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경영쇄신안 발표에 앞서 그룹 임원진들과 검찰 수사 등에 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2016.10.25/뉴스1=박지혜

"고객과 임직원, 협력업체 여러분, 깊이 사과 드립니다"


25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는 비장한 표정을 한 24명의 '롯데맨'이 연단에 일제히 올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소진세 롯데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을 비롯 주요 임원들과 23개 계열사 대표이사들이다. 이들은 입장 직후 일제히 사과 의사를 표명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비장한 느낌마저 감도는 사과를 마치고 신 회장은 연단에 서서, 안경을 쓰고 대국민사과를 기반으로한 경영 쇄신 계획에 대해 읽어나갔다. 23명 임원들은 무대 양측에 서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회장을 꽉 채운 언론은 신 회장의 한 마디, 동작 하나에 주목하며 플래시를 터뜨렸다.

신 회장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검찰수사로 다시 심려를 끼쳐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최근 그룹이 처한 상황과 국민 여러분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깊이 고민했다"고 밝히며 △준법경영위원회 구축 △호텔롯데 상장 △지주회사 체제 전환 △그룹 정책본부 전면 쇄신 등을 골자로 한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다.

신 회장은 "복잡한 지배구조와 권위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키는데 많은 부족함이 있었다"며 "그동안 신격호 총괄회장을 보좌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해 왔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이룩하지 못한 점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먼저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드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해 복잡한 구조를 정리해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또 "호텔롯데 상장을 조속히 재추진하겠다"며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기업을 공개해 주주구성을 다양화하고, 글로벌 기업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국민 사과 및 그룹 혁신계획을 밝히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검찰수사로 다시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준법경영위원회 신설, 호텔롯데 상장 재추진 등 그룹 혁신계획을 밝혔다. 2016.10.25/뉴스1 =안은나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전면 쇄신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계열사를 지원하는 역할 중심으로 조직을 축소 재편하고, 계열사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책임 경영을 강화하겠다"며 "전문 경영인이 그룹과 계열사를 책임지고 미래를 이끌어가도록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투자와 고용에도 적극 나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성장전략을 양적 성장 방식에서 사회와 산업 생태계를 고려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 국민의 기대와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좋은 기업이 되는데 주력하겠다"며 "그 연장선에서 사회공헌과 동반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향후 5년간 40조원 투자, 7만 명 신규 채용, 3년 동안 1만명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의 계획과 함께 호텔·면세 사업에 적극적으로 재투자해 경쟁력을 키우고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시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도 밝혔다.

신 회장은 또 지난해부터 지속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더 이상의 혼란 없이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50년 전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롯데를 창업한 신 총괄회장의 기업보국 정신을 이어가겠다"며 "국민과 사회가 기업에 바라는 가치와 요구에 부응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10여분의 사과문 발표가 끝난 뒤 다시 안경을 벗은 신 회장과 굳은 표정으로 서있던 '롯데맨'들은 또 한번 깊이 고개를 숙이고 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