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기이사 이재용의 최대과제 '新 경영철학'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왼쪽)과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에서 회동을 마친 후 로비에서 손 회장을 배웅하고 있다./사진=오동희 기자

27일 열리는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된다. 약 80년 역사의 삼성이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대 이병철 회장의 창업과 이건희 회장의 수성에 이어 이 부회장의 새로운 도약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맞게 되는 것이다. 2년여간 병상에 있는 부친을 이어 삼성의 대표기업에 책임지는 자리를 맡게 된 이 부회장 앞에는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당장 갤럭시노트7 발화사고 이후 실적에 대한 부담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경영간섭, 대내외적인 삼성에 대한 압박을 견뎌내고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를 비롯한 삼성그룹을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놔야 하는 과제다. 이와 관련 삼성 내외부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쏟아내고 있다.

◇거함 삼성 선장의 자질…신시대의 철학 요구=현재 가장 절실한 것은 삼성의 리더로서 이재용 부회장이 꿈꾸는 '기업이란 무엇이며, 이를 이루는 철학과 비전'의 제시다. 또 이를 내외부와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스마트폰을 어떻게 잘 팔 것이며, 삼성전자의 실적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를 묻는 것은 우문이라는 게 재계 내부의 대체적 시각이다. 삼성전자의 CEO들이 가질 수 있는 목표이지, 삼성그룹 총수에게 주어진 숙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일각에서 일컫는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도 '거함'을 이끄는 선장의 비전도 철학도 아닌 비전과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 또한 언론 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 측면이 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실용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일컬어지는 계열사 매각 작업 등이 그것이다. 최근 몇년간 숨 가쁘게 진행됐던 화학과 방산 계열의 매각은 이 부회장의 단독 결정이라기보다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전에 최종 결재한 마스터플랜을 차질없이 진행한 '실행자'로서의 역할이 컸다.

이 부회장의 진짜 시험대는 삼성전자 등기이사를 맡게 되는 시점부터이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종업원, 주주, 고객들에게 삼성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이며,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설명하고 공유하는 '삼성의 새 철학'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지난 80년간 이어온 삼성의 경영철학은 '사람과 사회를 생각하는 글로벌 일류기업이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삼성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돼 있다.

이 철학과 핵심 가치를 지키면서도 바뀐 시대에 맞게 이를 재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시발점이 이 부회장 스스로 선택한 등기이사의 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패러다임 변화에 맞는 변화 시도 필요=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올리는데 선봉장 역할을 한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20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앞으로 삼성은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며, 신경영은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위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의 추격과 글로벌 경기침체, 스마트폰의 위기 등 최근 삼성 내부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부회장이 '이사회'를 통한 경영과 '주주중시 경영'에 방점을 찍은 것도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수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건희 회장이 이끌던 시대의 대규모 R&D와 선단식 경영이 한국경제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많지만 이제는 환경이 바뀌었다"며 "디지털테크놀러지 시대에서의 창의적 기업으로서 패러다임 변화를 잘 감안해 기업을 경영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를 맡는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과거 한국적 기업문화를 벗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준비도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고려해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를 맡고 책임지겠다는 모습은 바람직하다"며 "직접 나서서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책임지고 이를 실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