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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기 와 시옹오 "김지하 시인과 교감, 케냐 고유어로 소설 쓰게돼"

'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회…"모든 언어는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할 때 문화 풍요로워져"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입력 : 2016.10.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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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25일 연세대학교에서 '케냐와 한국의 문학적 연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제공=토지문화재단
케냐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25일 연세대학교에서 '케냐와 한국의 문학적 연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제공=토지문화재단

"감옥에서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작가 김지하의 정신과 교감하며 소설을 썼죠. 그 때 감옥에서 시작된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기 김 시인이 한국어로 작품을 썼듯) 저는 (케냐의 고유어인) 기쿠유어로 글을 쓰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케냐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25일 김지하 시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언어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는 동등한 위치에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기념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 언어가 다른 언어들보다 원래 우월하다거나 한 언어를 위해 다른 언어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세상의 모든 언어는 인류 공동의 문화와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말했다.

응구기의 이 같은 주장은 모국인 케냐가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당했던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강요하고 권력의 언어로 삼았듯 영국도 케냐의 언어를 영어에 종속시켰다"며 "한국이 독립 이후 한국어를 되찾았던 것과 달리 케냐는 독립한 뒤에도 그 언어를 되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응구기의 초반 작품인 '울지마 아이야'와 '한톨의 밀알' 등은 1950년대 식민지배를 받은 케냐를 배경으로 서구 제국주의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원주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지만 모두 영어로 쓰였다. 그는 "(당시) 영어는 케냐에서 진보와 지성, 학식의 기준이자 상상력의 언어였다"며 "1962년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땐 언어선택에 의문을 느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가 모국어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게 된 계기는 세계적인 작가들이 모이는 국제펜클럽대회였다. 그 자리에서 아프리카 언어의 풍요로움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영어로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고 했다. 케냐로 돌아온 그는 영어과 교수로 일하면서 영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과를 폐지하고 대신 문학과를 설립한다. 또 아프리카 고유어인 기쿠유어로 된 최초의 현대극을 만들며 '탈식민주의' 운동을 이어나간다.

응구기 와 시옹오는 이날 자신의 부인인 응지리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무엇보다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데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사진=박다해 기자
응구기 와 시옹오는 이날 자신의 부인인 응지리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무엇보다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데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사진=박다해 기자

김지하 시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1976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긴급회담에 참석했을 때다. 응구기는 "당시 서점에 있던 유일한 영어책이었던 김 시인의 '민중의 외침'을 샀다"며 "사회적인 관심사, 한국어와 (한국) 민중의 특성을 담은 그의 시에서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케냐와 한국이 유사한 양상을 띠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한국의 억압적인 정치 관행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다.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그가 기쿠유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투옥됐기 때문. 그는 감옥에서 기쿠유어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응구기는 "소설의 줄거리는 김지하의 시 '오적'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시를 통해 만났을 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김지하의 정신이 감옥 독방에서 나와 함께했다"고 말했다. 당시 화장지에 써내려간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는 1981년 우여곡절 끝에 출간됐다. 기쿠유어로 쓰인 최초의 현대소설이다.

응구기는 "출간 일주일쯤 전 출판업자는 익명의 협박전화를 수차레 받았고 무장 괴한들의 습격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책을 출판했다. 나 역시 (그 소설로) 망명작가가 됐다"면서도 "이 소설을 쓰면서 식민 권력은 피식민자에게 그들의 언어를 강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응구기는 이후에도 김지하의 시 '비어'를 각색한 연극을 기쿠유어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케냐와 한국만큼 서로 동떨어져 보이는 두 나라도 없어보이지만 놀랍게도 한국 문학은 케냐의 현대 기쿠유어 소설에 영향을 미친 셈"이라며 "한국어에 뿌리를 둔 김지하 시인의 작품이 그의 작품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내 작품에 영향을 준 것처럼 세계가 아프리카 언어로 된 지적이고 문학적인 산물에서 가르침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관돼있어요. 한 나라의 국민성이나 문화도 결국 내외부적인 영향의 결과물이죠. (그렇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는 동등한 위치에서 주고받아야 합니다. (각 나라의) 언어가 만나는 것은 문명의 산소와 같고 문학은 그 산소를 발생시키는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과 케냐의 연대가 그것을 증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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