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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볼푸르트의 아우구스트

[동네북] <26> 아르노 가이거 '유배중인 나의 왕'

동네북 머니투데이 이인선 동네북서평단 주부 |입력 : 2016.10.29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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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이 회사로 옵니다. 급하게 읽고 소개하는 기자들의 서평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속도와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읽고 소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서 모였습니다. 머니투데이 독자 서평단 ‘동네북’(Neighborhood Book). 가정주부부터 시인, 공학박사, 해외 거주 사업가까지. 직업과 거주의 경계를 두지 않고 머니투데이를 아끼는 16명의 독자께 출판사에서 온 책을 나눠 주고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북 독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 또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독자들을 만나려 합니다. 동네북 회원들의 글은 본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볼푸르트의 아우구스트

아우구스트 가이거는 오스트리아 브레겐트 주의 볼푸르트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였던 1944년 2월,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나갔다 돌아온 후 고향에서 소박하고 안온한 삶을 선택한다. 그가 평생 읽은 유일한 책은 ‘로빈슨 크루소’이다.

그는 독실하고 성실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과 잘 지내지는 못한 듯하다. 원래부터 자기감정을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자라난 환경이 다른 가족들과는 늘 문화적 단절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매번 휴가철이 되면 볼푸르트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로 가족들의 기대에 어긋났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엔 늘 뚝딱거리며 무언가를 만들 궁리를 했다. 가족을 위해 나름의 소신을 갖고 일했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전까지는.

“충분히 오래 기다리는 사람은 왕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끝나는 ‘유배중인 나의 왕’은 아르노 가이거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르노는 1997년 첫 소설 ‘회전 목마타기의 짧은 수업’을 발표한 후 2005년 ‘우리는 잘 지내’로 독일서적상을 수상한다.

그가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애쓰던 기간에 그의 아버지 아우구스트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는다. 소리 없이 찾아와 뇌를 손상 시키는 질병 치매,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병세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병은 아버지에게 그물을 던졌다. 교묘히 눈에 띄지 않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아버지는 이미 꼼짝없이 그물에 갇혀 있었다.”

알츠하이머의 특성은 불안, 건망, 환각 현상이 번갈아 오고, 때로는 공간감각이 상실되어 현실세계와 상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우구스트는 그가 평생동안 살았던 집에서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자꾸 집으로 가겠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서도 여기가 집이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의식은 이 병의 증상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치매환자는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탓에 안정감을 상실하고 그래서 그 느낌을 되찾을 수 있을 만한 장소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작가는 아버지의 83세 생일 날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잡동사니를 정리하다 스물 네 살 아버지의 전쟁에 대한 기록노트를 발견한다. 그곳에는 가족들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잊지 못할 기억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왜 그토록 아버지께서 볼푸르트 밖의 세상으로 나갈 기회를 잡지 않으셨던지 비로소 알게 된다.

치매로 인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지만 환자 본인은 때로 그 징후를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치매 환자들은 “뭘 해도 제대로 되는 게 없어” 또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라는 말을 흔히 한다. 아우구스트 역시 그가 머물고 있던 요양원의 환자를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가련한 얼간이들”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의 생애를 보면, 능력을 하나하나 더해가다가 정점에 이르면 능력을 하나하나 덜어내게 된다. 오르막을 오르다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것처럼. 꼭 질병을 얻은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간혹 지난날의 영화를 되돌아보며 허무해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아우구스트는 치매를 앓고 있지만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전해준다.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불행하지는 않아. 이제 다 지나간 일이야. 다른 사람들이 잘해내면 같이 기뻐해 줄 수는 있어.”

인생의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초원의 빛, 꽃의 영광!

나의 아버지, 볼푸르트의 아우구스트
작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6년간 기록했고 아버지 생전에 이 책을 출판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트는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은 출간과 함께 슈피겔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고 요한 베어 문학상을 수상했다.

전후세대로 “여러 일을 겪었고 여러 가지를 가졌고 여러가지를 이룬”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와 오버랩 되는 아우구스트의 이야기. 성과만 중시하는 능력중심의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유배중인 나의 왕=아르노 가이거 지음. 김인순 옮김. 문학동네 펴냄. 223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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