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는 여의도도 청탁금지법 후폭풍…순대국집만 북적

# 지난 25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에서 유명한 한우전문점에는 빈자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소고기 1인분에 3만원이 훌쩍 넘지만 한 달 전에만 해도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자리를 확보하기 쉽지 않았던 곳이다. 직장인들로 붐비던 이 가게의 저녁 풍경은 가족 단위 손님들이 도란도란 고기를 구워먹는 한적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가게 점원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가족 단위 손님이 늘어난 게 가장 큰 변화"라며 "전체적인 손님수가 줄어든 것도 있지만 객단가가 낮아지면서 매출이 20%가량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이후 증권사·자산운용사가 밀집돼 있는 서울 여의도 상권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고급술집, 한우전문점 등은 타격을 입고 있는 반면 순대국집이나 삼겹살집 등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밀집돼 있는 동여의도의 경우 당초 청탁금지법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상 공직자 등과 함께 공공기관으로부터 권한(업무)을 위탁받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임직원이 공무수행 사인((私人)으로 법 적용대상에 포함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식당이 선보인 메뉴 광고.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금액 한도인 3만원을 넘지 않으면서도 소주를 무제한 공급한다는 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공무수행사인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어 일단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투자분석 관련 한 직원은 "컴플라이언스실로부터 자산운용사 사람들이 공무수행사인으로 분류돼 청탁금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어 이들을 만날 때 주의하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업무와 관련된 약속은 잡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한 관계자는 "대형 PEF의 경우 거의 대부분 국민연금의 자금을 위탁운용하고 있어 공무수행사인으로 분류될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투자와 관련해 기업 관계자들을 만날 때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모임이 일시적으로 위축되면서 1인분에 3만원을 넘지 않는 이른바 '김영란 세트'가 식당가를 휩쓸고 있다. 여의도 한 음식점은 흑돈 또는 한우, 식사와 함께 소주를 무제한 공급하는 2만9900원 짜리 세트메뉴를 내놓으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정한 식사금액 한도인 3만원을 넘지 않으면서도 소주를 무제한 공급한다는 점이 인기의 요인이다.


식당 관계자는 "전체 350명 정도를 받을 수 있는데 평일 저녁 예약손님이 200명이 넘는 경우가 많다"며 "청탁금지법 시행 전에는 저녁 예약손님이 100명이 안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증권업계 손님이 가장 많은 목요일의 경우 식당이 만석이 돼 손님이 되돌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가게를 찾은 손님 A씨는 "술까지 생각하면 1인당 3만원 한도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여의도에 많지 않은데 소주를 무한정 마실 수 있어 이곳을 택했다"고 말했다.

주로 점심장사를 하던 순대국집은 저녁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이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4인용 테이블 10개 정도가 있는 한 순대국집의 경우 저녁식사를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하는 경우도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순대국집에서는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먹어도 1인당 3만원을 넘지 않는다"며 "서로 부담없이 저녁을 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반면 질 좋은 한우로 인기를 끌었던 한우전문점의 경우 저녁 손님이 많이 줄었다. 이 식당은 암소 꽃등심 1인분(150g)에 6만5000원을 받는다. 이 식당 관계자는 "각자 계산하는 손님이 늘었지만 전체적으로 단체손님은 줄어들었다"며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에 있는 유명 소고기 식당 한 곳은 최근 문을 닫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