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랠리 제동 '경고등'…6년 달러 강세장 저무나

최근 두드러진 달러 강세 행진에 곧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세를 불리고 있다. 6년 가까이 이어진 달러 강세장이 막바지에 도달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WSJ달러인덱스는 이달 들어 지난 25일까지 2.5% 올랐다. 월간 기준으론 올 들어 두 번째로 강력한 랠리가 될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2월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달러 강세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덕분에 달러는 올해 연간 기준으로 지난 2월 이후 처음 상승세로 접어들 태세다. 달러값은 지난해 8.6%, 2014년에는 12.5% 올랐지만 올해는 아직 지난해 말보다 1.8% 낮은 수준에 있다.

WSJ는 그러나 최근에 달러 강세가 더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미국의 성장세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미국 콘퍼런스보드와 미국 노동부가 최근 각각 발표한 10월 소비자신뢰지수와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을 문제 삼았다. 미국 소비자들의 경기전망을 반영하는 소비자신뢰지수는 9월 103.5에서 10월에 98.6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CPI는 전달에 비해 0.3%, 식료품과 에너지 등을 제외한 근원 CPI는 0.1% 오르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부진한 지표가 미국의 성장둔화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이는 내년에 FRB의 금리인상 여지를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금리인상 기대감이 약해지면 달러의 랠리도 힘이 빠지기 쉽다.


일각에선 6년 가까이 이어진 달러의 강세장이 막바지에 이른 게 아니냐는 진단이 나온다. 달러는 2011년 이후 주요 통화에 대해 36% 올랐다. 비관론자들은 달러가 최근 강세를 띠는 건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 일본 엔화의 약세 탓이라고 지적한다. 달러가 지난해 스위스프랑화 이외의 거의 모든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를 띠고 2014년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통화로 부상한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우선 순이익 침체에 빠진 미국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일어날 수 있다. 달러 약세로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이는 미국 증시에 호재가 된다.

달러로 가격을 매기는 원유 등 국제 원자재(상품) 가격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큰 신흥시장엔 반가운 소식이다.

반면 달러 약세는 유럽과 아시아 주요국 중앙은행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판에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 환율 방어 비용이 커진다.

WSJ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수준이 높아진 것도 달러 약세의 전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올해 2분기에 2.65%로 2012년 4분기(2.7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강세로 무역수지가 나빠진 탓이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 4-5%를 넘나든 데 비하면 개선된 것이지만 WSJ는 경상수지 적자 비율의 급격한 상승이 달러 강세장이 정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토머스 플러리 UBS웰스매니지먼트 외환 전략 부문 책임자는 "큰 움직임 뒤에는 조정이 언제 닥칠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자신은 고객들에게 최근 달러 랠리를 이익 실현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1.09달러 수준인 달러/유로 환율이 1년 안에 1.20달러로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고수하고 있는 만큼 달러 자산의 투자 매력이 여전히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과거의 강세장에서 달러는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20%가량 올랐는데 이번에는 아직 10%밖에 안 올랐다.

앨런 러스킨 도이체방크 G10(주요 10개국) 통화 전략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려 하는 한 달러 강세가 동반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우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ofAML) 글로벌 채권 및 외환 리서치 부문 책임자는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도 경기와 달러값을 부양할 것이라고 봤다.

다만 재정정책 전문가들은 다음달 미국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장악하지 않는 한 정지출 확대를 통한 새 부양책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BofAML의 우도 미국 정치권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면 달러 가치가 유로와 엔화에 대해 10%가량 추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