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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정주영과 이승철

박종면칼럼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입력 : 2016.10.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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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으로 해체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전경련이지만 잘 나갈 때도 있었다. 전경련의 전성기는 서울올림픽을 유치했던 고(故) 정주영 회장 재임시절(1977~1987년)이었다.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 포드 대통령이 퇴임한 후니까 1977~1978년쯤이다. 어느 날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에서 정주영 회장한테 만나자는 연락이 와 고위인사를 만났더니 미국에 가서 퇴임한 포드 전 대통령을 만나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얼마 뒤 미국 가는 길에 포드 전 대통령을 만났다. 5억원을 기부해 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알겠다고 하고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실무자를 시켜 일본의 경단련(經團聯)은 혹시 어떤지 알아보라고 했다. 포드 측에서는 경단련에도 기부를 요청해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5억원은 너무 많고 2억원만 주면 되겠다고 판단한 정주영 회장은 고민 끝에 묘안을 냈다. 미국 갈 때 데리고 갔던 통역을 불러서는 전경련 관계자들 앞에서 포드 측에서 얼마 요구했는지 공개적으로 물었다. 통역은 당연히 5억원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정 회장이 노발대발했다. 5억원이 아니고 2억원이라고 분명 내게 말해 놓고는 이제 와서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통역을 혼냈다. 그리고는 전경련 관계자들에게 '포드 전 대통령 측이 요구한 대로' 2억원만 보내주라고 지시해버렸다.

얼마 뒤 미국 측에서 중앙정보부 쪽으로 강하게 항의가 들어왔고, 중앙정보부에서는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중정에서 정 회장을 만나자는 연락이 빗발쳤다. 정 회장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며칠을 버텼다. 그 이후에도 다시 몇 차례 더 연락이 왔지만 정 회장은 계속 버텼다. 결국 포드 측에 대한 전경련 기부는 2억원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기업들에 대한 기부요구가 잦았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이 된 미르재단 486억원과 K스포츠재단 288억원만이 아니다. 청년희망펀드, 중소상공인희망재단, 지능정보기술연구원 출연 등 언론에 공개된 것만 해도 합치면 2000억원이 넘는다.

재계에서는 이처럼 알려진 것 외에도 뒤로 뜯긴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너 문제로 시달렸던 모그룹에서 올 들어 강제적으로 낸 돈을 계산해 봤더니 미르재단 출연 등을 합쳐 2000억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시 총수 문제로 시달렸던 다른 그룹에서도 권력 쪽으로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한다.

칼자루를 쥔 정치권력이나 비선 실세들이 압박해 올 경우 이를 거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주영 회장의 경우처럼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유신말기의 중앙정보부는 지금의 비선실세 최순실이나 안종범 수석 등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막강하고 무소불위였다. 그래도 정주영 회장은 배짱과 지혜로 잘 받아 넘겼다.

현재 전경련의 실질적 CEO는 허창수 회장이 아니고 이승철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이 만약 자신이 권력실세인 것처럼 휘젓고 다니지 않고 미르와 K스포츠재단 출연 요구에 정주영 회장처럼 버텼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출연금액을 절반 이하로 크게 줄였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권력의 압박이 심해질 때 그가 아는 수많은 기자들 중에 한 사람한테라도 슬쩍 흘렸다면 어땠을까.

역사의 큰 물줄기도 때로는 작은 몸짓 하나로 바뀌기도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양파껍질 벗겨지듯 끝없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통쾌함 보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큰 지금 그 작은 몸짓 하나 없었던 게 아쉽다. 정주영과 이승철, 그릇의 차이일까 아니면 품성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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