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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영화를 보다… '배리어프리' 영화 체험기

[보니!하니!]화면해설 들으며 '머릿속 스크린' 만들어… 제6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머니투데이 이슈팀 박지윤 기자 |입력 : 2016.1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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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영화'는 정말 눈을 감아도 장벽 없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까. 체험에 사용한 안대./사진=박지윤 기자
'배리어프리영화'는 정말 눈을 감아도 장벽 없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까. 체험에 사용한 안대./사진=박지윤 기자
눈 감고 영화를 보다… '배리어프리' 영화 체험기
눈을 감고 영화를 보면 어떨까? 귀를 막고 보는 것은? 불편하고 답답할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장애인들의 영화 감상을 막는 '장벽'을 허무는 영화, '배리어프리(Barrier Free)영화'를 시각장애인과 같은 환경에서 감상해보기로 했다. 정말 장벽이 없어질 수 있을까.

지난 10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열리는 제6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개막작인 안재훈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 배리어프리버전을 관람했다.

"곧 영화가 시작됩니다." 안대를 썼다. 혹시나 벗겨질까봐 눈을 깜빡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단단히 동여맸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앞이 안 보인다는 사실에 더해 누군가 안대를 쓴 모습을 본다는 것에 왠지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극장도 암전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얼른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배리어프리영화는 기존의 영화에 두 가지가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하는 화면해설이 들어간다.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대사, 음악, 효과음을 자막으로 넣는다.

신비로운 느낌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영화가 시작된 건가. 제작사 시그널 같은 건가.'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배우 김정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란색 사람과 초록색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배리어프리영화제 로고입니다." 개막식에서 봤던 로고를 떠올렸다. 시각장애인들은 이것이 어떤 모양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이어 감독, 제작 등 안내에 이어 제목이 나왔다. '소중한 날의 꿈'.

제6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가 2016년 11월10일부터 13일까지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1, 2관에서 열린다. 사진 왼쪽은 영화제 포스터, 오른쪽은 개막작 '소중한 날의 꿈' 포스터./사진=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공
제6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가 2016년 11월10일부터 13일까지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1, 2관에서 열린다. 사진 왼쪽은 영화제 포스터, 오른쪽은 개막작 '소중한 날의 꿈' 포스터./사진=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공
첫 장면은 한 고등학교의 운동회였다. 여고생들이 계주를 하고 있다고 김정은씨가 말했다. 환호성이 들렸다. 김정은씨는 스탠드에선 학생들이 응원하고 있다고 알렸다.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상냥한 목소리였다.

"민정이가 이랑이를 따라잡았네요." 바통을 들고 달리고 있는 주인공의 이름은 '오이랑'이었다.

경쟁자 민정이가 앞서나가자 이랑이는 일부러 넘어졌다. 바통도 떨어졌다. 이기지 못하느니 지는 게 낫다며 경기를 포기했다. 하늘엔 만국기가 휘날렸다. 보이지 않는 장면들은 이렇게 화면해설을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소리. 이어 "오이랑 괜찮아?"라는 대사가 들렸다. 이 순간 들리지 않는 것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자막이 나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랑이가 사는 동네 풍경이 이어졌다. 80년대 시골 마을이었다. 기찻길 양 옆으로 늘어선 작은 집들, 이랑이네 방앗간, 논밭, 학교, 굴다리, 구름이 뜬 파란 하늘 등이 지나가는 것을 김정은씨가 하나하나 짚어줬다. 화면해설이 알려주는 동네 모습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상상했다. 화면해설의 속도와 음향으로 볼 때 버드아이뷰로 그린 마을 곳곳을 화면을 전환하며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 상영 전 안재훈 감독은 이 영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눈을 감고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렸다. 머릿속 스케치는 매우 바빴다. 마치 책 한쪽 귀퉁이에 연속되는 그림을 그려 손으로 휘리릭 넘기면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앞뒤 양쪽에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극장에서 영화 '러브 스토리'를 본 이랑이가 엉엉 우는 장면이었다. 지금 이랑이가 어떤 모습이기에 다들 이렇게 웃는 걸까. 안대를 벗고 확인해보고 싶었다. 화면해설이 미처 허물지 못한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몇 번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답답했고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다녔다. 서울에서 온 예쁜 수민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순박하게 생겼다는 철수는? 방패연을 타고 나는 모습은 어떨까? 철수와 삼촌의 아지트는?

평소에도 영화를 볼 때 장면이나 대사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모든 장면을 100% 이해하고 기억해가며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부딪힌 장벽도 상상으로 메우면 된다며 안대를 벗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정 궁금하면 다음에 확인하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언제든 장벽 없이 영화를 볼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오만한 생각이었다.

아지트 천장을 설명하는 화면해설이 나올 때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뒷목이 무거워져 다시 자세를 바로하면서 스스로 얼마나 시각에 익숙한 사람인지 깨닫기도 했다.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고 넘기며 물음표를 마주치기도 여러 번. 서서히 이런 감상에 익숙해졌다. 영화가 끝나갈 때쯤엔 머릿속에 '나만의 스크린'을 세울 수 있었다.

이랑이의 꿈에서 목이 긴 공룡들이 우주를 향해 가는 모습, 마라톤을 하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삼촌의 경비행기가 나는 모습을 제법 근사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비장애인의 배리어프리영화 체험은 독서, 더 정확히 말하면 오디오북을 듣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제6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상영시간표.  모든 영화는 무료이며 현장 발권은 1인2매, 온라인 예매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와 맥스무비 사이트에서 1인4매까지 가능하다. /사진=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공
제6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상영시간표. 모든 영화는 무료이며 현장 발권은 1인2매, 온라인 예매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와 맥스무비 사이트에서 1인4매까지 가능하다. /사진=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공
"한 번 체험한 것과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의 감상은 다를 거예요." 2016년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일반인 홍보대사로 활동한 시각장애인 김정훈씨가 기자의 체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기자와 달리 "머릿속으로 그리진 않고 그냥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봐요"라고 했다.

하지만 감각의 차이 때문에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같은 것이기도 했다. 김씨는 영화를 '본다'고 표현했다. 그는 "저는 영화를 듣는 게 맞지만 보통 '영화를 듣는다'고는 말하지 않잖아요. 어떤 감각을 쓰든 영화를 감상한다는 결과는 같죠. 그러니 볼 수 없지만 '영화를 본다'고 말하는 거예요"라고 알려줬다.

이날 김정훈씨와 함께 귀갓길을 동행했다. 우리는 오늘 본 영화의 캐릭터에 대해서, 좋아하는 목소리와 화면해설자에 대해서, 객관적 해설이 좋은지 주관적 해석이 개입된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씨는 일본에서 내년부터 상시로 애니메이션 '원피스' 배리어프리버전을 상영한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이제는 외화 더빙이 거의 없어 시각장애인들이 외화를 볼 기회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와 헤어지고 가는 길, 2017년 새로운 홍보대사로 임명된 시각장애인 박유주씨의 말을 떠올렸다. "의학이 발달해서 수술을 받는 것처럼 장애인에 의한 장애극복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사회에서 장애물이 없어지고 인식이 바뀌면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어요. 배리어가 없는 영화를 통해서 영화관에서만큼은 장애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깜빡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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