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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천왕이 사라지자 성공한 우리금융 민영화

[박재범의 브리핑룸]

박재범의 브리핑룸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입력 : 2016.11.14 08:02|조회 : 1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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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이 걸릴 줄 몰랐을 거다. 한빛·평화·광주·경남은행 등을 하나로 묶어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한 게 2001년. 민영화 첫 단추를 꿰는 데만 정권이 세 번 바뀌었다. 4번의 좌절도 겪었다. 그 드라마 중심에 이른바 ‘금융권 4대 천왕’이 주·조연 역할을 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민영화란 수레가 조금씩 움직였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거슬러 가보자.
왼쪽부터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왼쪽부터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우리금융 민영화가 처음 시도된 것은 2010년 10월. 뜬금없는 선언처럼 들렸다. “불가능하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민영화 첫 시도’라는 공치사 하나 얻고자 칼을 뽑아들 정부는 아니었다. 1차 시도는 하나금융지주를 염두에 뒀다. 당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던 김승유는 우리금융지주에 관심을 보였다. 정부는 지방은행을 분리한 뒤 우리은행만 하나금융에 주는 방안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김승유는 돌연 외환은행을 택한다. 우리금융 매각 공고를 낸 지 한달 만의 일이다. 김승유의 전략에 말렸다는 당시 관계자들의 복기다. KB지주 등 다른 경쟁자들이 우리금융에 관심을 쏟지 못하도록 김승유가 견제구를 던졌는데 여기에 모두 당했다는 얘기다. 정부는 2010년 12월 17일 우리금융 민영화 중단 선언을 했다.

두 번째 작업은 2010년말 금융당국 수장으로 온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시작한다. 그는 “(우리금융지주) 정관을 직접 썼다”며 결자해지의 의지를 보인다. 최종 결과물은 만들어내는 김 위원장이었기에 시장은 특히 주목했다. 준비없이 시작할 정부가 아니었다. 플랜A와 플랜B를 모두 갖고 작업에 들어갔다.

플랜A는 산은금융지주(현 KDB산업은행)와 합병안이었다. 내부 검토 결과 최선의 선택이란 결론이 났다. 당시 산은금융지주 회장이었던 강만수와 이명박 대통령의 돈독한 관계도 긍정적 요인이었다. 강만수가 직접 대통령을 만나 합병 방안을 설명하고 ‘OK’ 사인을 받았다.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 논란이 있었지만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일사천리였다.

강만수는 곧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팔성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강만수는 이팔성과 힘을 합쳐 ‘메가뱅크’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팔성도 겉으론 환영의 뜻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산은 합병설’이 일찍 흘러나오면서 플랜A 카드는 사라진다. ‘산은 합병설’ ‘산은 특혜설’은 이팔성측에서 흘렸다는 게 금융권의 정설이다. 실제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 팔리는 것을 마냥 반기는 이는 드물다.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 처지면 마음이 더 무겁다. 이팔성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정부는 그래도 플랜B를 믿었다. 플랜B의 주인공은 KB금융지주였는데 데뷔조차 못했다. 자사주 매각 등으론 재무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실제론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이었던 어윤대가 머뭇거린 결과였다. 결국 김 위원장의 시동은 석달만에 꺼진다.

이듬해인 2012년 김 위원장은 다시 시동을 건다. 세 번째 시도다. 김승유, 강만수, 이팔성에 이어 남은 카드는 결국 어윤대였다. KB금융지주는 적극적이었다. 실무팀까지 구성, 우리금융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자사주를 팔아 만든 실탄도 충분했다. 명분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정부는 KB금융지주를 믿었다. 하지만 어윤대는 이 믿음을 져버렸다. 드러난 무산 배경은 사외이사의 반대였다. 하지만 지주 회장의 퇴각이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었다. 그 이유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김석동 전 위원장도 “당시 KB금융지주가 우리은행을 인수하지 않기로 한 것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다만 어윤대 스타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인수합병(M&A)의 경험이 없으면 결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렇게 김승유, 강만수, 이팔성, 어윤대 등 ‘4대 천황’이 우리금융 주변을 맴돌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우리금융 민영화가 조금씩 이뤄진 것은 ‘4대 천황’이 사라진 이 정부부터다. 무엇보다 ‘일괄 매각’에서 ‘분리 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정권 차원의 결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우리저축은행, 우리자산운용, 우리파이낸셜 등이 NH농협금융지주에 팔린다. 당시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임종룡 금융위원장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광주은행, 경남은행도 각각 지방은행에 팔린다. 정치적 갈등이 우려된다며 배제됐던 ‘분리 매각’은 별다른 잡음없이 마무리됐다.

우리은행 경영권 매각은 한차례 더 실패한 뒤 과점주주 매각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4전5기의 성공을 거두며 민영화의 깃발을 든다. 시장에선 “정치, 관치가 최대한 배제된 상황이 만든 결과”라고 평한다. 정부가 힘을 뺄수록 결과물은 좋다. 그나마 현 정부 들어 은행권이 조용한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첫발을 내디딘 우리은행 민영화가 최종적으로 성공하려면 이 교훈을 간직해야 한다. ‘4대 천왕’이 있을 때 안 되던 일들이 그들이 사라진 뒤 조금씩 풀리는 현실이 주는 교훈 말이다. 어려울 것은 없다. 임 위원장이 누차 강조해온 대로 “민간에 되돌려 주면…”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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