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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과학문학공모전 수상작 관련기사37

네번째 세계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가작 '네번째 세계' <9> 한계

제1회 과학문학공모전 수상작 머니투데이 이영인 (필명) |입력 : 2016.12.3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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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AT. 34

시간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의문이 생겼다.

시아의 시간여행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시아가 어찌어찌해서 과거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자. 과거로 나아가는 동안에 시아의 움직임 자체가 주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향으로 인해 입자들의 위치와 속도가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변질된 과거는 더 이상 완전하게 동일한 과거가 아니게 된다.

그리고 한가지 의문이 더 있다. 아무리 완벽하게 시간을 역행한다고 쳐도, 완벽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을까? 예를들면 우리는 시아에 딸려 19억년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9억년전에는 우리라는 존재가 없었다. 시아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우주를 과거와 완벽하게 동일한 우주라 할 수 있을까? 정말로 완벽하게 역행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수 없어야 한다. 아니지, 19억년 전이니 우리 존재 자체가 없어야 한다. 그게 진짜로 완벽한 과거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현재의 우주를 완벽하지 못한 과거로 만든다.

이것은 무언가 모순적인 느낌이 든다. 그럼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현재 우리가 있는 우주는 무엇인가? 대체우주같은 무엇인가? 실제로 이런 논리로 대체우주를 설명하는 이론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미래인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나는 수십년간 땅이나 파고 함선이나 몰던 놈이다. 일류 물리학자를 갖다놔도 머리를 싸맬 판에 나야 말할 것 뭐 있나. 어디부터 맞고 어디부터 틀린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진실이 궁금하지만 능력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AT.36

스티브와 곤살로가 자기네들끼리 크게 싸웠다. 주먹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덕택에 오늘 둘 다 파업을 했다. 원인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사소한 것들이다. 이들의 부담감이 가장 크긴 했을 것이고, 결과 때문에 실망도 크긴 했을 것이다. 가서 이래저래 말을 걸어봤지만 시큰둥하다.

더 말을 섞어봤자 서로 짜증만 날 것 같아서 그냥 내비뒀다.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들 하라지.

두 달 가까이 정신나간 소리들을 현실이랍시고 듣고 살았더니 다들 의욕이 없다. 모두들 자기 침대에 틀어박혀서 늘어져 있다. 썪어서 희뿌연 수조 안에서 배를 뒤집고 떠 다니는 물고기 시체들과 같은 꼴이다.

아, 스타니슬라프가 아직 생물 분석을 조금씩 하고는 있다.

사실 스타니슬라프는 나름 성과를 냈다. 이런저런 방법을 거쳐서 순수한 샘플을 취득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취득한 샘플로 검사를 돌려보니 온통 미확인 구성성분이고, 분석 불가였다. 결국 이 쪽도 막다른 길이다.

AT. 38

곤살로와 스티브가 해석을 재개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내가 자료를 뒤지고 일지를 끄적이는 것도 비슷한 심정이다.

우리가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도 실마리를 찾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잃은 것이 너무나 거대해서 현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일까?

시아 안의 내용이 유일한 희망인 것이야 맞지만 전혀 진척이 없다. 속도를 따져보면 저것을 다 해석하기 전에 우리가 죽을 것 같다.

다 해석한다 해도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추정하기로는 시아 안에 따로 시간이동을 설명하는 매뉴얼 따위는 없다. 그러니 번역이 완료되더라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물리학 법칙을 부정하는 수준이라면 더더욱.

내게 있어서 최선의 결과는 시아에게 미래로 이동하는 능력이 있는 경우이다. 가능성은 꽤나 낮아 보이지만 그것이 그나마 희망적인 시나리오다. 그러지 못하면 죽는 것이고.

그래도 또 문제가 있다. 우리가 미래로 가는 방법을 찾았다 치자. 시아로 이동한 미래는 과연 우리가 '현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모습일까? 무언가 바뀌지는 않았을 것인가? 20억년이다. 우리가 아주 미세한 영향만 주어도 나비효과처럼 엄청난 차이점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의 시간 이동 자체가 무언가 시공간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집을 나설 때 인사하던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마주할 기회가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스타니슬라프의 검사는 중지시켰다. 데이터가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최고 순도의 샘플을 채취해봐도 어느 정도는 오염되어있었고, 오염되지 않은 부분은 분석 불가이니 의미가 없다. 녀석도 이제는 살덩이 만지는 데 질렸고.

대신에 곤살로와 스티브를 도와주라 지시했다. 실상은 둘만 놔두면 또 싸울까봐 불안해서 그런 것이다.

나머지 녀석들도 무기력한 모습이지만 협력을 해주려 하기는 한다. 너무 막다른 골목이라 시킬 것이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AT. 44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정립해 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여태껏 시아를 논하면서 외계 생명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외계가 아니었다.

오늘 해석한 부분에서 시아의 최초 좌표를 찾았다.

그곳은 지구였다.

시아에 내장되어 있는 성간 지도가 있었는데, 우리 우주와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어서(예를 들면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작은 행성이 하나 더 있다) 처음에는 아닌 줄 알았다. 그러나 큰 모양새가 거의 같았다.

세상에, 아직도 놀랄 일이 더 있었는가.

위치 좌표 덕택에 최초 기록된 일자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현재로부터 400~700년 후라고 했는데 성간 지도와 대조해보면 570년±10년 후로 계산된다.

즉, 시아는 외계생명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약 570년 후의 지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의문은 풀었다. 그래서 인터페이스가 그렇게 비슷한 것이었군.

그런데 이 저주받을 물건은 의문이 하나 풀리면 새로운 의문이 한 다섯 개쯤 튀어나온다.

사실 타임머신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잠깐 나왔던 가설이기는 하다. 그러나 언어 체계가 너무 달라서 바로 사라진 가설이었다. 바로 이게 또 문제다.

그 570년 사이에 대체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왜 언어가 완벽하게 달라진 것인가? 전기와 이진법 빼고는 왜 이렇게 호환되지 않는 것인가? 왜 뜬금없이 행성의 모양과 구조가 변한 거지?

뭐, 우리네 발전 속도를 생각해보면 600년 가까운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600년 전 사람이 우리 시간대에 와도 비슷할 것이고.

하지만 다른 것은 그나마 이해할 부분이라도 있지만, 언어체계가 이토록 다를 수는 없다. 스티브도 동일한 의견이다. 논리 번역 프로그램에는 지구상 존재했던 모든 언어가 담겨있다. 시아가 지구에서 만들어졌다면, 그러니까 시아 안의 언어가 지구상의 언어와 기원이 같다면 해석이 최소 10배는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이 안의 내용을 모두 번역했을 수도 있다.

이 정도로 번역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아예 언어의 기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 600년 사이에 문명이 멸망하기라도 했던 것인가? 그리고 이런 물건을 만들어? 설령 기계가, 흔히 영화에서 나오듯이 AI가 발달해서 인류에게 반기를 들고 지구를 지배한 다음에 이 물건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최소한 알파벳 쪼가리라도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무슨 외계인이라도 침공을 해서 인류 문명을 멸절시키기라도 한 것인가? 대체 우리 미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이 시점에 와서까지 해결되는 것은 없고 의문이 늘어만 간다면 어쩌란 말인가?

AT. 49

이제 교양서건, 전공서건 뭔가를 읽는 것도 질린다. 다들 내색은 안하지만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중이다. 다른 것을 생각하다 우리 현실을 떠올리면 숨이 턱 막혀온다. 자기개발서나 정서불안을 도와주는 책을 읽으려 해도 전혀 집중을 못하겠다.

오랜만에 회의를 해 봤다. 지금 상황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은 의외로 몇 가지가 있었다. 다만 어느 것 하나 현대물리에 반하는 부분이 있어서 증거도 없이 꺼내면 미친 소리라 할만한 것들이다.

이제는 해석때문에 보는 곤살로를 제외하면 아무도 자료들을 뒤적이지 않는다. 허기사 봐도 뭐가 나오는게 아니니까. 닥친 난관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사람은 너무나 무기력하다.

아직까지 선원들 간의 분쟁이 없는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마 물이나 식량이 아직은 넉넉해서겠지. 그런데 식량이 떨어지면 어찌해야 하나. 탈출선 밖의 기괴한 시체라도 주워 먹어야 하나?

AT. 50

사흘 전부터 시아의 해석이 전혀 진척이 없다. 아니, 완전히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이 제대로 되고 있는 중이라면 번역속도는 점차 빨라져야 한다. 그런데 핏발을 세워가며 고생하고 있지만 아무리 해도 번역속도가 향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속도가 떨어지는 중이다.

지랄맞을. 빌어먹을. 만능 번역기인양 소개하더니 이것도 X같은 프로그램이다. X같지 않은게 없어!

블랙필드도, 괴생명체도, 언어 해석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어디에도 만족할만한 답은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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