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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세계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가작 '네번째 세계' <10> 영감

머니투데이 이영인 (필명) |입력 : 2017.01.0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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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AT. 53

오후 내내 누워 뒹굴대고 있었다. 움직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으니까. 그렇게 무기력하게 비적거리던 중, 일지나 회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태껏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의문이 떠올랐고 곧바로 답이 찾아왔다.

충격적인 것이다. 그리고 기발했다. 한동안 이게 얼마나 말이 될런지 확인하기 위해 자료들을 뒤적여봤다. 그리고 분석하는 녀석들에게 가 내 생각, 아니 내 가설을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곤살로와 스티브는 망치로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즉시 선원을 소집했다. 일단 그럴싸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나머지는 검증해보고 적을 것이다.


AT. 54

맙소사. 가능성이 있다.


AT. 56

며칠간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다. 아직까지, 최소한 우리들 머리로는 오류를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은 가설이다. 아직 완전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따라서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는 물건이며, 어쩌면 갈 곳 없고 답을 잃은 우리끼리 말도 안되는 것을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체불명의 물건을 발견하고, 이상한 소리를 검증할 방법도 없이 믿고 있다니, 얼마나 무기력한지. 맹목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다만 이 가설로는 모든 것이 한번에 설명된다. 모든 의문이, 근원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점이 우리에게는, 빌어먹을, 너무나, 눈물나게 매력적인 것이다.

처음의 의문은 괴생명체에서 시작한다. 시아와 블랙필드에 관련된 물리학적인 자료는 아무리 뜯어봐도 진전이 없어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튀어나온 시간이동이라는 주제가 너무 강렬해서 이 괴생명체들에 대한 수수께끼는 방치해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그럼 저들은 왜 생긴 것일까? 일단 시아가 지구에서 온 물건이고, 시간이동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올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괴생명체들은, 정말로 외부에서 유입된 것인가?

갑자기 머리가 쿵 하고 울리더니 생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생명체들을 분석했을때 아무리 애를 써도 샘플은 '우리에 의해' 오염된 상태였었다. 우리에 의해. 아무리 섬세하게 채취해서 분석해봐도 죽어라 우리 유전자만 검출되었었다.

그런데 오염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유전자로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래,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함선 내에는 수많은 우리의 유전자가 돌아다닐 것이다. 각질, 머리카락, 땀이나 호흡 등으로 인해, 우리는 항상 죽은 세포들을 떨궈낸다.

굉장히 고약한 '몽상'이지만, 오류를 발견할 수가 없다.
언젠가 '비디오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때 우리는 불가능한 이야기라 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 기본적으로는.

그러나, 시아가 시간을 역행하는 방식이 정말로 그런 식이라고 가정해보자. 깨진 유리잔이 한데로 합쳐지고, 그 안에 담긴 액체가 하늘로 치솟아 잔 안으로 들어가는 그런 방식으로. 기존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던 방식으로. 어찌됐던 우리가 알던 우주의 법칙을 무시하는 수준의, 초월적인 외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각질같이 우리 몸에서 떨어져나간 죽은 세포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떨어져나갔던 방식 그대로, 우리 몸으로 돌아오겠지. 죽었던 세포들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동영상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뒤로 걸어가며, 여태껏 했던 행동들을 역으로 반복하겠지.

물론 여기까지라면 찌글찌글한 개소리에 불과하다.

자, 거기에서 한 가지 요소를 더 추가해보자. 이전에도 적었지만 시아는 시간을 되돌릴 때 우리 주변에 특수한 시공간을 마련해서 외부 시공간으로부터 분리했다. 우리가 시아에 딸려서 20억년 가까이 과거로 갈 동안, 시아는 우리가 있던 시공간에 무슨 짓을 한 것은 확실하다. 아니라면 우리는 놔두고 저 혼자 과거로 이동했겠지.

이 사실이 앞의 가설과 합쳐질 때가 문제다. 그러면, 우리 몸에서 떨어져 나가 죽어있던 세포들은 어떻게 되는가? 원래대로라면 우리 몸으로 돌아와서 살아나겠지. 그런데 우리는 시아 때문에 다른 시공간에 '갇혀'버렸다. 그렇다면 죽었던 세포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조금 헷갈리는데, 맞게 썼나? 그래, 갈 곳이 없어진다. 융합되어야 할 세포들이 갈 곳이 없어 융합되지 못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단 한가지 가정, 말도 안되는 가정을 한다면, 대충이나마 우리가 끙끙대던 수수께끼가 전부 해결된다.
그 가정은 바로 시아가 열역학 제 2법칙을 무시한다는 가정이다! 어쨌거나 물리학의 혜택으로 먹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부담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열역학 법칙은 현대물리학의 근간이다. 물질이 모두 붕괴되고,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 세계에서조차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다. 그것이 철칙이다. 언젠가 적었다시피 동영상을 역재생하는 것처럼 과거로 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열역학 법칙 때문이다.

그러니 평소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는 두 달째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의 홍수 속에서 시달렸다. 좀 맛이 갔더라도 별 수 있겠는가. 사실 이전에도 간간히 나왔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근거가 없으니 당연히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저 밖의 괴생명체가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점이,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머리속에 급작스레 떠오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 어떻게 근거가 되는지 정리해 보자.
언젠가도 적었지만 생명체가 이 세계에서 죽음을 맞는 이유는 바로 열역학 2법칙 때문이다.

우리 우주에서는 열역학 법칙에 의해 에너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를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쉽고, 파괴가 생성보다 쉽기 때문에 생물은 먹을 것이 없거나 노화가 진행되면 죽게 된다. 그것이 숙명이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모르는 특이한 상황이 있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세계가 있다면? 물질만으로 우주의 법칙을 설명할 수 없게 되자 반물질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검증했던 것처럼, 반엔트로피계가 있다고, 아주 어거지로 가정을 해 보자.
솔직히 완전히 상상할 수는 없다. 일단 이런 가정 자체가 기존 물리학을 무시하는 짓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상황이니까, 우리처럼 기괴한 상황이니까 한번 해보자면, 에너지를 얻기가 잃기보다 쉽고, 생성이 파괴보다 쉬워질 수 있다. 원래라면 우주공간에서 생물 생존과 번식이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역전된 세계에선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생물이란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생물체와는 전혀 다르겠지. 바로 저 밖에 있는 것처럼.

정리해보자. 만약에 열역학 제 2법칙이 무시되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반엔트로피계가 있어서, 그 세계에서는 생과 사의 가치가 역전되고, 파괴가 재생보다 쉬워진다. 그 덕에 우리 몸에서 떨어져나간 죽은 세포들이 우주공간에서 정상우주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번식'했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저 밖에 있는 괴생명체가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이 된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유전자와 분석불가 대상만 나오던 것도 설명이 된다. 우리 몸에서 떨어져나와,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세계에서 번식한 세포라면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
게다가 밖의 생명체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생태로 보였다. 죽음에서 자유로운 반엔트로피계의 생물은, 이 세계의 생물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를 가질 것이다. 바로 밖에 있던 저 놈들처럼!

자, 여기까지라면 그럴싸하지만 그게 전부다.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설과 나의 사유는 그 이상을 보고 있다.
열역학 제 2법칙과 항상 같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무한동력과 영구기관. 열역학 제 2법칙은 열이 100% 일로 전환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주가 '세금'을 걷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기계들-생물을 포함하여-은 작동하려면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의 공급이 필요하고, 결국에는 고장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100억년동안 끄떡도 없이 가동하는 기계를 옆에 두고 있다. 그것도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출력을 가진 채로, 현대물리에서 불가능하다 정의한 방법으로 시간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놈이!

우리는 그동안 시아의 특성을 하나하나 밝혀낼 때마다 난색을 표했다. 어느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물리학을 기반으로 했을 때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아를 열역학 법칙을 초월한 영구기관이라 가정한다면, 그 정신나간 가동 시간과, 출력과, 시간여행법이 한번에 정리가 된다! 열역학 법칙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가동시간이 100억년이 아니라 1조년, 아니 그 이상이라도 상관없다. 그럴 것 아닌가! 당연히 출력도 마찬가지이다.

블랙필드? 시아가 무한동력이면 못할 게 뭐냐! 블랙홀, 다시말해 초중력은 공간을 통제함으로서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역으로, 시아가 그 어마어마한 출력으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면 공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방식이라면 블랙필드도 얼추 아귀를 맞출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개념적으로는 시간을 디지털 동영상처럼 역재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시간이 거꾸로 가도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법칙 때문이다. 다시말해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시간을 역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혼이 빠진 것은 아닌가 싶다. 언젠가 일지에도 시아가 그 정도 물건은 아닐 것이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세상에, 이게 틀릴 줄이야. 내가 열역학 법칙을 부정하고 영구기관을 믿게 되다니!

그러니까 이 추측에 따르면 ‘엔트로피가 반전된 세계, 반엔트로피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들 사이에서 비슷한 '가설'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물리학을 정면으로 뒤엎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근거가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생각처럼 괴생물체가 반엔트로피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그러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맙소사! 이게 사실이라면 외계인이나 타임머신보다도 더 중요한 발견이다. 물리학, 아니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견이 될 것이다! 만류인력의 법칙이나 상대성이론이 바꾼 것보다도 더 상위의 개념, 우주 제일의 법률이라 생각되던 것이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의문도 그럴싸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함선 붕괴를 겪었었다. 처음에는 우주 폭풍이라고 생각하고, 아직까지도 왜 우리 함선이 무너졌는지 이유를 몰랐었다. 블랙홀이니 어쩌니 해서 여태껏 이유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지.

그런데 이 가설을 이용하면 이것도 완벽하게 설명이 된다. 시아가 과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를 특수한 시공간으로 격리하면서, 시공간 바깥쪽의 함선에 있던 죽은 세포들은 갈 곳을 잃고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세계에서 되살아나 번식하기 시작한다.

세포가 그 짓거리, 반엔트로피계 내에서만 가능한 일반적인 생물체로서는 불가능한 번식을 20억년을 했다고 쳐 보자. 그러면 그 번식한 세포의 양이 어떨까?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쩌면 그 세포의 질량은 별보다 더 커질지도 모른다.

시아가 블랙필드를 통해 만든 독립된 시공간 때문에 시간과 엔트로피가 역전된 상태에서 살덩이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엔트로피가, 그러니까 우주의 법칙이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 그 어마어마하게, 어쩌면 별보다 더 거대해진 살덩이들이 우리 함선을 짓뭉개버렸고, 함선이 곧바로 무너졌을 것이다. 시아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대로 우리 살덩이들 때문에 생매장 당했겠지.

그런데 시아에게는 비상 보안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변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감지하고 그 비상 프로그램을 작동한 것은 사실로 보이고.
그렇다면 붕괴 직후에 블랙 필드가 발동되면서 공간차단이 되었을 것이고, 한창 우리를 파묻으려고 쏟아져내리던 살덩이의 일부만이 블랙필드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밖에 있는 정체불명의 생물체였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왜 그 날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붕괴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시아가 비상 프로그램을 작동했는지, 왜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깔려있었던 것인지도 모두 일관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한두가지만 연결되면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이야기가 부합된다면 실로 그럴싸하다. 몽롱한 환희가 맴도는 것이 무슨 약이라도 한대 맞은 기분이다. 이런 것을 내가 생각해내다니...

좀 너무 흥분한 것 같지만,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상상이 과도할 정도로 나래를 펼치지만, 그나마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만 적은 것이다. 아, 어디까지나 내가 간파하지 못한 오류라면 있을 수도 있겠지.

이 가설은 물리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코웃음칠법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책을 뒤져보니 흥미롭게도 여태까지 혁신적인 이론이 나올 때에는 언제나 그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납득이 간다. 두 달 가까이 이해 못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던 수수께끼들이 한번에 전부 해소되어버린다! 내가 아니라 누구를 이 기괴한 장소에 데려다놔도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곤살로를 비롯하여 함선의 어느 누구도 오류를 찾지 못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회의적으로 들었지만, 점점 설명을 듣다보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빠져들게 된다.

분명히 세세한 부분에서 비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상식에 반하더라도 이 명쾌함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것을 반균질화 가설(anti-homogenization hypothesis)이라 칭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 우리로서는 이것을 검증할만한 능력이 없다. 좀 더 능력있고 전문적인 누군가에게 검증받고 싶다. 달려나가 외치고 싶다. 아아, 그러나, 이곳에는 우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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