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12월…'최순실 정국'이 빨아들인 '연말 모임'

공무원 김모씨(32)는 올해 송년회가 줄어든 것을 확연히 느낀다. 평년 같았으면 하루가 멀다하고 잡힐 모임 약속이 현저히 줄었다. 먼저 송년회하자고 말을 꺼내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나라가 뒤숭숭하니 직장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연말 모임이 사라지고 있다. 경기악화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가 '최순실 정국'까지 덮쳐 "한해를 마무리하자"는 의미의 송년회가 다수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박모씨(41)는 "올해는 연말연시 모임이 거의 없다"며 "주변에서도 경기가 워낙 안 좋다보니 굳이 송년회를 해야되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씨(35)는 이번 주말 참석할 예정이던 고등학교 동창회를 뒤로 하고 광화문 집회에 갈 계획이다. 이씨는 "그간 바쁜 일정 때문에 한번도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해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며 집회 참석을 다짐했다.

실제 올해 송년회를 계획하는 이들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정보 사이트 잡코리아가 지난 25일 20~50세 남녀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송년회 계획' 설문조사에 따르면 '송년회 계획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53.6%로 지난해에 비해 6.2%포인트 하락했다. 5명 중 1명(20.8%)은 송년회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송년회 규모도 단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송년회 계획이 있다는 응답자 중 75.6%가 '간단한 식사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술자리를 가질 예정이라는 응답자는 절반 이하(47.6%)에 그쳤다.


최근 몇년간 송년회와 연말모임은 줄어드는 추세였다. 겨울휴가를 떠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고 경기가 악화되면서 회식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순실 정국까지 덮쳐 사람들이 연말모임을 주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연말 모임이 줄어든 분위기를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술로 보내는 송년회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고 다음날 업무부담만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대기업 5년차 직장인 김모씨(34)는 "팀 송년회, 부 송년회, 지인 송년회까지 12월은 술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송년회가 줄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송년회 일정을 잡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세종시 공무원 이모씨(35)는 "요즘 정부가 뒤숭숭하기 때문에 함께 술 마시며 놀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다들 조용히 할일만 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송년 모임이 줄어들면서 외식업 등 관련업계는 한숨을 쉬고 있다. 피자·치킨 등 인기 프랜차이즈 업체와 패밀리레스토랑·호프집 등도 이달 들어 매출이 10~20% 감소했다.

연말 모임이 줄어들다 보니 외식업계는 울상이다. A외식업체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11월 중순부터 망년회 등 송년 예약이 줄줄이 잡혔는데 올해는 12월 예약 일정이 텅 비어있다"고 말했다.

광화문 H한식집 관계자는 "예약이 확실히 많이 줄었다"며 "주말 촛불집회 때문에 타격도 크고 예년 같으면 12월 모임도 많이 찼을텐데 지금은 (예정된) 단체 모임이 드물다"고 전했다.

송년 모임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59)는 "송년회는 그동안 못보던 사람들도 만나고 안부도 묻는 자리인데 그런 자리가 점점 사라져 아쉽다"며 "올해는 나라가 불안하니 마냥 사람들을 모을 수도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