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1만원짜리 돈을 100원으로'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10만원짜리 지폐가 하루 아침에 1000원의 가치로 바뀐다면.

2009년 11월30일 북한 조선중앙은행 각 도 지점은 오전 11시부터 주민들을 상대로 화폐 교환을 시작했다.

하루 전인 29일 북한 정부는 옛날 돈과 새 돈을 100대 1로 교환하는 5차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구권 1000원을 내면 신권 10원으로 교환해 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교환 규모에 제한이 있어서 구 화폐를 많이 가지고 있던 주민들은 재산을 강탈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17년 전인 1992년에도 4차 화폐개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공적 경제부문과 사적 경제부문의 차이가 적어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화폐 개혁은 달랐다. 이미 북한 사회에선 음성적인 시장이 광범위로 확산돼 주민들은 암암리에 필요한 식재료나 물건을 소비·유통하고 있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개인 재산은 당연히 저금소가 아닌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북한 당국이 이들을 좋게 볼 리 없었다.

반면 당에 충성하는 고위층은 대부분 북한 돈보다 유로나 달러 등 외화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폐 개혁으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이 화폐 개혁은 김정은 후계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숨겨놓은 돈을 끌어내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지자에겐 보상을, 반대자에겐 피해를 입히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5차 화폐개혁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후계자 업적 쌓기 등 정치적 목적이 우선시돼 시장 확산을 막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흉작까지 겹쳐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났지만 국가 차원의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화폐 개혁에 앞서 주민들에게 배급하기 위한 식량 생산을 늘리거나 공급량을 확보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다. 믿을 건 자기 자신뿐. 다시 경제 활동의 음성화가 심화되고 불법 시장 활동이 늘었다.

화폐개혁 직후 인플레이션은 30배에 육박해 1kg에 20원이던 쌀은 600원으로 폭등했다. 은닉 재산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사람들이 위안화나 달러로 서로 바꾸려 하면서 외화 가치도 폭등, 1달러에 30원이던 환율은 530원으로 급등했다.

북한은 다음해 5·26 당지시를 내려 시장을 이전대로 돌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시안에는 식량배급과 물자공급을 중단하고 시장을 전면허용, 각종 무역 통제와 규제의 철폐 등의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