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스테이트'가 된 산유국 미국

/ 자료=Thomson Reuters Datastream, 글로벌모니터

원유시장에서 쓰는 용어 중에서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번역을 하자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죠. 산유량을 늘렸다가 줄였다가 마음대로 조절을 하는 나라입니다.


'스윙 스테이트'의 지위는 양방향입니다. 유가가 많이 떨어질 때에는 주도적으로 생산량을 줄여 가격하락을 막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걸 감수하면서 원유산업 전체의 생산기반이 무너지는 걸 막는 겁니다. 이런 솔선수범에는 보상도 따릅니다. 유가가 너무 많이 오를 때에는 주도적으로 생산을 늘려 원유소비의 기반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합니다.

이런 '스윙 스테이트'는 그래서 산유국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국제적인 원유생산 정책을 수립할 때 자국 이익에 부합하게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죠. 역시 솔선수범의 보상입니다.

그러나 이 역할을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스윙 스테이트'가 되려면 산유량을 언제든지 대폭 늘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원유 매장량이 상당히 많고 여유 생산설비가 제법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동안 이 역할은 오로지 사우디아라비아만 행사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가을 유가폭락이 시작되었을 때 사우디는 그 역할을 거부했습니다. 사우디가 감산에 나서면 다른 나라들이 원유생산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죠. 유가는 살리지 못한 채 사우디의 시장 점유율만 빼앗기는 결과가 됩니다. 그만큼 그 때나 지금이나 전세계 원유생산 능력이 수요에 비해 이례적으로 너무 많았던 겁니다.


사우디의 '역할' 거부로 결국 국제 원유시장은 무한 증산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원유 생산량은 무한정 불어났고 유가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습니다.

그 혹독한 고통을 겪은 산유국들이 이제 결국 '공조 감산'에 나섰습니다. 사우디는 여전히 '스윙 스테이트' 역할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공조' 감산이니까요.

그 결과 원유시장에는 새로운 '스윙 스테이트'가 탄생했습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유가 폭락이 계속되자 지난 2015년부터 미국의 산유량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에너지 업체들이 줄지어 도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초여름 절정기 이후로 미국에서 줄어든 원유 생산량은 무려 하루 평균 100만배럴에 달합니다. 이번에 OPEC이 합의한 감산량 120만배럴에 거의 맞먹습니다.

즉, 산유국 감산으로 인해 유가가 크게 오르면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앞으로 다시 대폭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유가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겠죠. 그래서 미국이 '스윙 스테이트' 지위를 얻게 된 겁니다.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많이 오르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이미 바닥을 치고 반등하고 있습니다. OPEC 감산 기대감으로 유가가 50달러 부근으로 상승하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는 미국 원유산업의 현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