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21조 '집회의 자유', 29년만에 국민 품으로

6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일대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날 행진은 사상 처음 청와대 100ｍ 앞 지점까지 이뤄졌다. /사진 제공=뉴스1

대한민국 시위 역사를 새로 썼다. 성역으로 여겨진 청와대 '코앞'이 뚫렸다. 분노를 다스린 냉엄한 시민의식이 오랜 족쇄를 끊고 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되찾았다.


지난 3일 열린 6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했다. 청와대 앞 100m 지점 행진은 대한민국 집회 역사상 처음이다.

주최 측 추산 서울에서만 170만명(경찰 추산 32만명)이 모인 단군 이래 최대규모 시위에서 이뤄진 일이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은 국민으로서 갖는 정당한 법적 권리다.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에게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금지 규정도 신설했다. 바로 이 헌법에 따른 법체계에서 실정법은 청와대 100m 이내만 집회·시위를 금지한다. 100m 밖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까지 현실은 달랐다. 대한민국 집회는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해왔다. 청와대 앞 집회·행진 신고에 경찰이 금지통고로 일관한 게 대표적이다.


100m는커녕 실제로는 1㎞ 안에 시위대가 들어가기도 거의 불가능했다. 대규모 시위라면 더더욱 그랬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 로터리(청와대 1㎞ 이내 위치)까지 뚫리면 서울 종로경찰서장과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경무관) 등 관련 책임자들은 옷을 벗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사진 제공=플리커

그만큼 청와대 가까이에 시위대를 들여놓는 일은 대통령에 대한 불경이자 위험이었다. 하지만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기적의 평화 촛불행진이 관행과 구습을 깨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불거진 현 정권의 헌법 유린문제에 맞선 시민들의 시위가 헌법상 자유를 바로 세웠다. 1987년 국민의 손으로 일군 집회의 자유가 29년이 지나서야 국민의 품에 제대로 돌아온 셈이다.

친구와 연인과 가족이 손잡고 나가 노래하고 외치는데 제동을 걸 명분도 없었다. 5차 촛불집회 때 청와대 앞 200m까지 허용한 법원은 이번에 더 대통령과 가까운 100m 지점까지 길을 터줬다.

시민들은 이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법원이 허락한 범위에서 청와대를 포위하는 '에워싸기' 행진을 벌였다.

이어 집회가 끝난 저녁 7시25분부터 청와대 방면 2차 행진을 진행했다. 시민들은 종로·서대문·청운동길 등 6개 경로로 나뉘어 걸었다.

청와대 턱밑을 넘어 코앞까지 파고든 기념비적인 날에도 시민들은 흥분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평화 시위를 이어갔다. 초대형 반정권 시위가 평화적으로 끝난 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경찰도 진압보다 질서유지에 방점을 뒀다. 대통령 퇴진 등 시민들의 엄중한 외침에 '소음관리'나 '해산명령'이 아닌 안전사고 주의를 당부했다.

몸싸움이나 안전선 침범 등 일부 시민의 돌발행동에도 연행보다 합법 시위를 강조하고 유도했다.

이날 집회는 2차 행진 이후 자정까지 청와대 주변에서 열린 시민자유발언 등의 행사를 끝으로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자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