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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오늘…전두환·노태우가 주도한 '12·12 사태'

[역사 속 오늘] 신군부 세력의 군사 쿠데타…16년 후에야 사법처리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입력 : 2016.12.12 06:00|조회 : 6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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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금남로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한 어르신이 기록물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스1
광주 동구 금남로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한 어르신이 기록물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스1

37년 전 오늘…전두환·노태우가 주도한 '12·12 사태'
1979년 12월12일. 전두환·노태우 등 당시 하나회 출신 군부세력은 정승화 육군 참모 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 혐의 조사를 이유로 불법 연행했다. 이들은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을 총으로 제압한 후 정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당시 10·26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사건 수사와 군 인사를 두고 정 총장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정 총장이 김재규에게 돈을 받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이날을 계기로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직하면서 신군부의 실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날의 12·12사태는 훗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탄생시킨 뿌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는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신군부 세력은 정 총장의 연행이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것이었다는 정당성을 갖기 위해 계속해서 대통령을 압박했다. 결국 최 전 대통령은 13일 새벽 정 총장의 연행을 재가했다.

이후 전두환의 권력 찬탈 시나리오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80년 6월 초헌법기관인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그해 8월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했다. 그리고 11월 전씨는 11대 대통령에 올랐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취임 후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우며 언론통폐합과 삼청교육 등의 조치를 강행하며 강압 통치를 이어갔다. 박종철군 고문 치사 은폐 조작 사건이 6월 항쟁을 촉발,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 항복을 했지만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정권은 후계자인 노태우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13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소야대를 만들었고 12·12와 5·18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전두환 친인척 부정비리까지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전두환은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백담사로 떠났다가 1년만에 국회 5공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한 뒤 다시 백담사로 돌아갔다. 이후 1년 후에야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12·12사태는 다시 주요 현안으로 등장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2·12 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과거 청산 의지를 밝혔다.

과거 불법 연행됐던 정 총장 등 22명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등 38명을 내란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 고발하면서 사법처리도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군형법 5조에 따르면 작당해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한 자는 사형에,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살상파괴 약탈의 행위를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일반 형법도 폭동 등 내란죄를 중형으로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을 반란 수괴로 인정하면서도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사건은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비자금 폭로 이후 역전됐다. 비자금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사상 처음 전직 대통령인 노씨를 비자금 조성혐의로 구속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즉각 역사바로세우기를 선언하고 5·18 특별법 제정을 공식화했다.

검찰은 서울지검에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발족하고 성공한 쿠데타와 대통령 재임 시절 조성한 비자금 관련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전두환은 이에 반발해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낙향 다음날 새벽 서울로 압송돼 구속수감 됐다.

이후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이후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이로써 쿠데타는 16년만에 사법처리를 받게 됐다.

다만 이들은 수감생활 2년 만에 석방됐다. 이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만난 자리에서 김 대통령이 먼저 사면의사를 밝히고 김 당선자가 동의하면서 이뤄졌다.

진경진
진경진 jk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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