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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오늘… 대선일 2시간전 정몽준, 노무현 지지철회

[역사 속 오늘] 정몽준, 16대 대선 노무현 지지철회 '혼란 가중'… 결국 노무현 당선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입력 : 2016.12.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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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통령 선거(12월 19일) 하루 전인 14년 전 오늘(2002년 12월 18일) 오후 10시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지지를 철회했다. 사진은 후보 단일화 후 부산에서 유세 중인 노무현과 정몽준. / 사진=노무현 사료관
16대 대통령 선거(12월 19일) 하루 전인 14년 전 오늘(2002년 12월 18일) 오후 10시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지지를 철회했다. 사진은 후보 단일화 후 부산에서 유세 중인 노무현과 정몽준. / 사진=노무현 사료관
14년 전 오늘… 대선일 2시간전 정몽준, 노무현 지지철회
'가장 영화 같은 선거'로 손꼽히는 16대 대통령 선거는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었다. 대선(12월19일) 하루 전인 14년 전 오늘(2002년 12월18일) 오후 10시 단일화 상대였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지지를 철회했다.

노무현은 곧장 정몽준 자택을 찾아가 지지철회를 거둘 것을 요청하며 기다렸지만 문전박대 당했다. 정몽준의 지지철회는 선거에 혼란을 가중시켰으나 근소한 차이로 승리가 점쳐졌던 노무현의 승리를 막지는 못했다.

노무현에게 정몽준의 지지는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2002년 초 당내 대선 경선에서 1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할 정도였던 노무현은 뛰어난 연설과 정책으로 최종후보로 결정된 뒤에도 반대 의원들의 낙마 추진 등 어려움을 겪었다.

노무현은 정치적 뜻을 같이했던 같은 당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문제가 터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노무현을 인정하지 않고 낙마를 바라는 같은 당 의원들이 이탈해 정몽준을 지지하는 협의체를 만들기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밀려 뒤늦게 시작된 대선 레이스에서 정몽준은 노무현의 지지율을 반토막 냈다. 10년 전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면서 약속한 '월드컵 유치'를 성공한 정몽준은 월드컵 열기를 이어가며 인기몰이를 했다.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적 상황도 맞아떨어졌다. 월드컵 기간 중 포르투갈 전 하루 전날(6월 13일) 치러진 3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압승(16곳 지자체 중 11곳 당선)을 거뒀고, 이와 맞물려 이회창 후보(한나라당)가 강세를 보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노무현은 그해 11월 정몽준에게 단일화 경선을 치를 것을 제안했다. 노무현에게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던 정몽준은 자신에게 유리한 'TV토론 후 여론조사결과 수용방식'과 '단일화 무효' 조건을 걸고 수용했다.

이들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러브샷' 하며 단일화에 합의했다. 공식 후보등록일을 며칠 앞둔 11월 24일 TV토론회가 열렸고 여론조사기관 3곳(리서치 앤드 리서치·월드 리서치 등)에서 노무현은 정몽준을 앞섰다.

국민적 관심은 노무현 지지율을 1위로 만들었다. 정몽준은 결국 승복하고 노무현 유세현장을 동행하며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후보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인제가 민주당을 탈당하기도 했으나 큰 영향은 없었다.

후보 단일화로 대선은 2강 구도로 자리를 잡았고 노무현이 이회창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지만 결과를 속단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무현의 승리가 점쳐졌지만 오차범위는 크지 않았다.

특히 정몽준이 선거 하루 전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정몽준은 노무현의 '미국과 북한과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는 유세발언을 문제 삼아 철회의사를 밝혔다. 선거일을 2시간 앞둔 상황이었다.

국민통합21은 "부적절하고 양당간 합의와 정책공조 정신에 어긋나는 발언"이라며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우방이고, 미국이 북한과 싸울 이유가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몽준과 노무현이 내각구성·재벌개혁 등의 논의에서 시각차를 좁히지 못한 속사정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노무현은 정몽준을 찾아갔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정몽준 지지층의 표가 절실했던 노무현에겐 악재가 될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은 노무현에게 지지를 보냈다. 투표결과 노무현은 48.9%의 근소한 득표차로 이회창(46.6%) 후보를 꺾었다.

이후 정몽준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20여년간 정치인생에서 나를 힘들게 한 때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마지막 순간,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밤"이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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