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페라리' 슈퍼카 타는 주식부자 누구?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주식부자는 빨간색 페라리(Ferrari)를 탄다.”


‘앞발을 든 야생마’ 엠블럼이 박힌 ‘빨간색 스포츠카’로 유명한 페라리는 슈퍼카의 대명사다. 대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페라리는 한마디로 성공의 상징이요, 남자들의 로망이다.

그래서 미국 월가에선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주식으로 큰돈을 벌면 빨간색 페라리를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국에서도 주식으로 수백억원을 번 부자들이 최고급 스포츠카를 구입하며 자신의 성공과 재력을 과시한 예가 적지 않다.

고졸 학력에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오로지 주식투자와 사업만으로 젊은 나이에 10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는 국내에 한 대뿐이라는 30억원대 부가티(Bugatti)와 람보르기니(Lamborghini), 벤츠(Mercedes Benz) 등 고가 외제 슈퍼카를 구입했다.

그가 노란색 람보르기니 옆에서 포즈를 잡고 서있는 사진은 한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씨는 올해 9월 불법 주식매매와 불법 유사수신행위 혐의로 구속됐고 결국 그가 소유한 고급 외제차 3대는 몰수 추징됐다.


2000년대 초반 19살의 나이에 30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1년 만에 100억원을 벌었다는 ‘주식제왕’ 복재성씨도 포르쉐(Porche), 벤츠, 벤틀리(Bentley), 마세라티(Maserati) 등 최고급 외제차 뿐만 아니라 황금색 람보르기니를 두 대나 구입했을 정도로 슈퍼카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그가 두 대의 황금색 람보르기니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이 SNS상에 올라왔을 때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렇듯 슈퍼카는 성공한 주식부자라면 응당 가져야할 필수 아이템처럼 돼 버렸다.

그러나 월가에서는 성공한 헤지펀드 매니저가 빨간색 페라리(슈퍼카)를 구입한 뒤에는 이전만큼 좋은 투자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레드 페라리 신드롬’(Red Ferrari Syndrome)이라 부른다.

헤지펀드 매니저가 막 투자업계에 뛰어들었을 땐 오로지 성공하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일한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도 포기하기 일쑤다. 그렇게 열심히 분석하고 발로 뛰어서 좋은 투자대상을 발굴하고 그 덕분에 결국 남보다 월등한 투자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일단 성공한 뒤에는 달라진다. 비싼 슈퍼카와 럭셔리 주택을 구입하고, 투자 분석보다는 사교모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펀드매니저에서 점점 인기를 좇는 유명인사(celebrity)처럼 변해간다. 그러는 사이 헤지펀드 투자성과는 나빠진다.

그래서 월가에서는 농담반 진담반격으로 헤지펀드 매니저가 성공한 뒤 빨간색 페라리(슈퍼카)를 구입하는지, 투자보다는 다른 일에 더 열중하지는 않는지 등을 잘 감시해야 한다는 투자조언이 나돈다.

“악마는 프라다(Prada)를 입는다.”

성공한 남자들이 빨간색 페라리(슈퍼카)를 구입한다면, 여자들은 성공하면 명품 핸드백과 구두, 옷 등 명품을 찾는다. 2006년에 나온 인기 영화 ‘악마는 프라다(명품 브랜드)를 입는다’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뉴욕의 패션잡지에 취직한 여주인공(앤 해서웨이 역)이 능력을 인정을 받으면서 점점 명품으로 치장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 해서웨이에게 “네가 처음으로 지미 추(Jimmy Choo) 구두(명품 여성구두)를 신을 때, 넌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명품의 가치를 한번 맛보면 마약과 같아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므로, 해서웨이가 지미 추 구두를 처음 신을 때 이미 악마의 유혹에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으로 성공한 남자도 빨간색 페라리(슈퍼카)를 탈 때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 되고 결국 본업인 주식투자보다는 다른 일에 더 신경을 쓰면서 주식투자 성과는 나빠지게 된다는 게 '레드 페라리 신드롬'이다. 빨간색 페라리의 저주랄까.

한편 이달 초에 발표된 한 재무학연구는 월가의 ‘레드 페라리 신드롬’을 다른 관점에서 분석해 학계의 시선을 끌었다. 이 연구는 빨간색 페라리를 악마의 유혹이 아닌 스피드를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하나로 봤다.

카레이싱, 스노보드, 번지점프, 킥복싱, 철인3종경기 등 스피드와 위험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과다하게 촉진해 타 운동에서 느낄 수 없는 엄청난 흥분과 쾌감을 안겨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극추구행위'(sensation seeking)라고 부르는데 익스트림 스포츠 외에도 도박이나 범죄행위 등을 통해서 흥분과 쾌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주식투자가 매우 위험하다는 점에서 주식투자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자극추구행위로 설명될 수 있다. 실제로 월가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 가운데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크 그린블라트(Mark Grinblatt) UCLA 교수와 매티 켈로하주(Matti Keloharju) 헬싱키경제대 교수는 2009년 자극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들이 (위험한) 주식거래를 재밌는(entertaining) 일로 여기고 더 빈번히 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재무학 최고의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리고 야우 루(Yau Lu) 센트럴플로리다대 교수, 수가타 레이(Sugata Ray) 플로리다주립대 교수, 멜빈 테오(Melvyn Teo) 싱가포르경영대 교수는 이달 초 발표한 논문에서 헤지펀드 매니저 가운데 빨간색 페라리 등 슈퍼카를 타는 사람들을 카레이싱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로 보고 이들의 투자성과를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이들의 투자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훨씬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슈퍼카를 보유한 펀드매니저들이 위험한 투자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이들이 보여준 투자수익률은 낮았다. 위험이 높은 투자를 감행했다면 그에 상응한 높은 수익률이 실현돼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즉 슈퍼카를 타는 헤지펀드 매니저는 자극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들이고 이들의 투자성적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들 교수들은 빨간색 페라리(슈퍼카)를 타는 헤지펀드 매니저에게는 돈을 맡기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증권회사나 은행 PB가 주식펀드를 권유할 때 꼭 해당 펀드매니저가 무슨 자동차를 타는지도 알아봐야 하겠다. 만약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가 빨간색 페라리나 황금색 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닌다고 하면 그 주식펀드에는 돈을 넣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