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 사회지도층 거짓말에 스트레스받는 시민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탄핵심판소추위원단·대리인단 첫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탄핵심판 답변서가 공개됐다. /사진=뉴스1

"잘 모른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그나마 나았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을 조사하는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증인들 중 상당수는 거짓 증언을 늘어놓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벌인 일들을 부인했고 증거가 드러나면 "선의로 했다"며 면피하려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회지도층들이 정황증거나 명백한 증거들을 외면하며 거짓말로 일관하자 시민들의 피로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거짓말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이유는 (거짓말을) 할 때 이를 숨기기 위해 과장되거나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무의식 중에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언론이나 검찰 수사 발표를 통해 밝혀졌음에도 관련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거나 당사자간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은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대해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며 "사람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단 이런 상황이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사회에 만연한 성공 우선주의가 만들어낸 '거짓말 일상화'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해도 성공만 하면 된다거나 화를 피하면 된다는 식의 한국사회에 내재된 '불문율'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란 주장이다.

지난 8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사진=뉴스1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사실 이번 국정농단으로 드러나는 사회지도층의 거짓말을 특수한 상황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일례로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며 형을 모면하려 하거나 검찰 출석 때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모습에 대해 시민들의 생각은 어떤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나 권력과 부를 가졌다는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면죄부를 주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던 일이 극대화된 것"이라며 "성공을 했거나 좋은 결과를 냈을 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이나 나쁜 행동을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상황 속에서 거짓말이 만연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들이 우리의 일상에도 고스란히 흡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습관적으로 먼저 거짓말을 하고 보는 게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대학입시 때 자기소개서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 등장하거나 입사지원서에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부풀려 적는 것도 비슷한 현상으로 지적된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한 강의의 태반이 '진솔한' 이야기보다 작은 이야기라도 '크게 부풀려' 쓰는 기술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회사에서 상사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비껴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본인이 한 거짓말을 스스로 되뇌는 등 믿음을 갖게 된다"며 "결국 노련한 거짓말은 완전히 감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교과서에선 정직하라고 배우지만 정작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면 손해볼 수 있고 거짓말을 얼마나 잘 포장하고 그것을 밀고 나가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나 책임 면피가 결정된다"며 "이번 상황을 겪으면서 시민들이 거짓말에 대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는 만큼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