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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도 페미니즘 이슈 있다 없다!? 과학단편의 통렬한 현실인식

[아주 주관적인 독서 - 2016 올해의 책 3/과학소설] '별의 계승자'·'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양 목에 방울 달기'·'최후 인류가 최초 인류에게'·'S.T.E.P.스텝'

동네북 머니투데이 정리=김유진 기자 |입력 : 2016.12.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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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우리는 흐름(트랜드)을 살핍니다. 정보에 소외되지 않고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쯤으로 이해하면서 말이죠. 하지만,개인화된, 파편화된 현대사회를 생각하면 아이러니입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스타일을 찾아가면서 살고 있는 걸까요. 독서는 어떨까요. 훌륭한 선생님들이 추천하는, 많은 국민이 찾은 베스트셀러만 찾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필요에서, 자기 호기심에서 시작한 책 읽기 대신 ‘유행 독서’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머니투데이는 올해의 책 선정을 고민하면서 ‘아주 주관적인 책 읽기’ 콘셉트를 적용해봤습니다. 2015년 11월부터 올해 11월 사이에 출간된 책 중 재미있게 즐겁게 읽었고, 그래서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만한 책. 머니투데이 독자서평단 ‘동네북’ 회원과 문화부 외부 필진 그리고 1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심사위원단과 수상자들이 인문사회학과 과학 분야에서 한 권씩 꼽아봤습니다. 여러분은 올해의 책으로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습니까.
과학계에도 페미니즘 이슈 있다 없다!? 과학단편의 통렬한 현실인식
◇ 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 아작 펴냄. 344쪽/1만4800원.


경이감과 논리를 동시에 챙기기에는 SF만한 장르가 없다. 그 SF 중에서도 호기심과 경이감, 치밀한 논리의 연쇄를 모조리 한 몸에 갖추는 작품들이 있는데, ‘별의 계승자’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별의 계승자’는 괴이한 사망 현장을 독자의 눈앞에 제시하며 포문을 연다. 그 사망 현장의 상황이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기에 적어본다. ‘달에서 5만년 된 시체가 발견된다. 그 시체는 우주복을 입고 있으며, 인류와 유전구조가 같다.’ 그렇다면 시체의 정체는 무얼까? 어떻게 달 위에 존재하고 있을까? 시체는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책은 퍼즐풀이식 추리소설처럼 출발한다. 하지만 일반 추리소설의 장점을 고스란히 품으면서도 답답한 밀실이나 기차 시간표나 복잡한 장치를 맴돌지 않는다.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달을 비롯해 여러 행성과 우주를 아우를 수 있는 논리와 상상력이다. 책은 거대한 사망 사건을 풀기 위해 우리 인류를, 그중에서도 과학자들을 탐정으로 내세운다. 이 탐정들은 서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가설과 논리를 무기 삼아 싸운다. 그리고 논쟁이 벌어지는 틈새마다 작가는 실제로 달과 태양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활력 넘치게 묘사해준다.

우주공간으로 뻗어 나가는 지적 추리물을 보고 싶다면 ‘별의 계승자’를 추천한다. 중등 과학교육을 착실히 받은 사람이라면 단박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도 친절하게 제시돼 있으니 풀이에 도전하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이다. 김창규 작가

과학계에도 페미니즘 이슈 있다 없다!? 과학단편의 통렬한 현실인식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아작 펴냄. 376쪽/1만4800원.


방사능 누출에 의한 대기오염과 그에 따른 생태계 파괴와 인류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질병의 출현과 점점 더 가혹해지는 천재지변은 인류의 생존에 대한 현실적인 위협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과 작가들이 한 세기 전부터 이에 관한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오늘 이곳에서는 여전히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고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환경이 파괴되는 중이며 신냉전 체제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핵전쟁 발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라는 자못 서정적인 제목의 소설을 통해 작가는 ‘그리하여 인류는 멸망 직전까지 몰리지만 오래 전부터 이를 대비해 온 소수의 과학자들이 인간복제에 성공한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생명체를 창조하는 유전공학 기술은 그동안 빠르게 발전하여 인간의 심장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스티븐 L. 퍼트라넥이 '화성 이주 프로젝트'에서 지적한 대로 빠른 시일 안에 인간의 유전자상 변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케이트 윌헬름은 이러한 발전 이전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환기하고자 한 듯하다. 동일한 유전자로 배양된 클론들은 같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지만 흥미롭게도 어떠한 계기를 통해 각성하는 바람에 ‘인간적인 특성’이 발현된 클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응징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운영해 나간다.

이미 40여 년 전에 ‘노래하던 새들이 사라진 이후’로 아포칼립스적 세계의 모습과 인간 복제에 관한 탐구라는 소재는 수많은 작품에서 닳도록 써먹어졌지만 이 소설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이제부터라도 다시금 힘을 합치고 기술을 개발하여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주인공인 마크의 깨달음처럼 “중요한 것은 미래 설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이며 그 삶은 다름을 인정하고 고독을 흔쾌히 영위할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과학계에도 페미니즘 이슈 있다 없다!? 과학단편의 통렬한 현실인식
◇ 양 목에 방울 달기=코니 윌리스 지음. 이수현 옮김. 아작 펴냄. 368쪽/1만4800원.

1920년대 미국에선 모든 여자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뎅겅 잘랐다. 단발머리가 폭발적으로 유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사람들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유행의 패턴이다. 책의 주인공 ‘샌드라 포스터’는 유행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다. SF 소설의 주인공답게 복잡계 이론을 적용해 단발머리가 유행한 원인을 차근차근 찾아 나간다. 마치 코니 윌리스 자신을 투사한 것 같은 주인공은 연구 실적도 딱히 없는 평범한 학자지만, 합리적이고 친절하며 유머러스하다.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매력적인 주인공 때문이 아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주는 조연 ‘플립’ 때문이다. 사무 보조로 일하는 플립은 작품 내내 주인공 뒤를 쫓으며 연구를 방해하고, 때론 사랑마저 방해한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마침 이 책을 읽을 무렵, 책 속의 상황과 실제 상황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것이다. 미국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통령을 맞아 크게 당황했다. 마치 책 속의 플립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야말로 혼돈의 극치였다.

사람들은 혼돈보다 정돈을 좋아한다. 재미있는 것들은 대개 혼란스럽지만 혼란스러운 것들이 반드시 재미있진 않다. 다행히도 코니 윌리스는 주인공 샌드라처럼 합리적이고 친절하다. 카오스 그 자체인 트럼프 같은 사람들에 대해 아주 쉽고 재미있는 문장으로 독자에게 설명해준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격변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혹은 미국 못지않게 혼란스러운 한국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을지도 모른다. 1회 한국과학문상 수상자 이건혁(대상)

과학계에도 페미니즘 이슈 있다 없다!? 과학단편의 통렬한 현실인식
◇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 아작 펴냄. 356쪽/1만4800원.

지구와 단절되어 있던 정착지 ‘와일어웨이’에 지구에서 온 남자들이 착륙한다. 이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정착지에는 지난 30세기 동안 남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절멸 이후 살아남은 여성들은 유전자 자체배양을 통해 자손을 생산하고, 사랑하는 여성과 가정을 이룬다. 과거에는 이것이 새로운 가정의 형태였을 테지만 600년이 지난 현재 이것은 와일어웨이의 역사이자 전통적인 문화가 된다. 그러나 지구에서 온 남성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여성들의 유전자만으로 종족 번식을 하는 정착지가 “매우” 비정상적이라 지적하며, 남성이 있어야 세계가 완전해진다고 역설한다.

‘혁명하는 여자들’ 표제작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조안나 러스)를 읽다 보면 수십 년 동안 질리지도 않고 반복돼온 페미니즘 이슈를 다시 돌이키게 된다. 혁명하는 여자들은 2차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했던 60년대부터 3차 페미니즘 운동이 한창인 현대까지의 SF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SF와 환상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15편의 작품들은 현실이 아닌 세계에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문체는 날카로우며 현실인식은 통렬하다.

안타깝게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차별에 대한 이슈는 현재 진행형이다. 논란과 분쟁, 여성혐오 언어를 남성혐오 언어로 반사 시키는 활동만으로는 깊게 뿌리내린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혁명하는 여자들’을 부담스런 ‘SF 페미니즘 소설’이 아닌 흥미로운 단편들이 가득 실린 이야기책으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1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자 박지혜(우수)

과학계에도 페미니즘 이슈 있다 없다!? 과학단편의 통렬한 현실인식
◇최후 인류가 최초 인류에게= 올라프 스테이플던 지음. 유비안 옮김. 블루프린트 펴냄/6000원.

이 책은 영국의 철학자 겸 작가였던 올라프 스테이플던이 1930년에 출간했다. 3대 SF 거장들이 등장하기 전의 고전 SF. 국내에는 올해 e북으로 출간됐다.

1930년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였기 때문에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도, 히틀러도, DNA도, 우주 경쟁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기에 출간됐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인이 가진 세계관은 우리의 세계관과는 상당이 달랐다. 핵무기 대신 독가스가, 2차 세계대전 대신 다른 전쟁이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상대성이론과 진화론을 비롯해 20세기 초기의 지식을 최대한 취합해 뛰어난 통찰력과 상상력을 보여준다.

책의 초반부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세를 다룬다. 이탈리아에서 히틀러에 비견될만한 군국주의자가 등장하고, 세계대전과 비슷한 국가 간 전쟁이 등장한다. 미국의 경제전략에 무너지는 러시아 등 실제와 놀랄 만큼 닮은 사건들을 묘사한다.

중반부부터는 아득히 먼 미래를 다루고 있다. 비록 핵폭탄과 DNA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와 매우 유사한 개념들이 등장해서 흥미롭다. 그리고 전혀 다른 형질의 외계인이나 인체 개조, 인간을 초월하는 진화 등 현대에도 유효한 소재들을 신화처럼 풀어나간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어색한 부분도 있으며, 현대에는 개선된 옛 과학이론 등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잘못된 상식도 들어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신비로운 인상을 줄 뿐 아니라 당시 지식인의 관점을 비교하여 읽는 재미가 있다. 1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자 이영인(필명, 가작)

과학계에도 페미니즘 이슈 있다 없다!? 과학단편의 통렬한 현실인식
◇S.T.E.P.스텝= 찬호께이, 미스터 펫 지음. 알마 펴냄. 528쪽/15000원.

‘알파고’ 쇼크를 겪고도 여전히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AI가 개개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차원 이상의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체계적으로 개입하여 공동체의 미래를 뒤흔들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범죄 예방 및 교정 시스템에 AI 가상시뮬레이션이 적용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초능력자들이 범죄를 예측한다는 설득력 떨어지는 설정이 아니다. 빅데이터와 결합된 AI는 실제로 사회적 비용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다. 소설 속 근미래에서 범죄율은 점점 감소하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이 시스템을 구매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가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변하지 않지만, 변하기도 한다. 과연 AI가 아무리 많은 사람의 정보를 빅데이터로 소화한다 하더라도 특정 개개인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100%가 아닌 근사치만으로 단지 최선이라고 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이 기꺼이 감내할 만한 사회적 비효율성은 어느 수준까지일까?

이 소설은 독자를 붙들고 가는 스토리텔링의 박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캐릭터들에 이입되는 체감도도 꽤 깊다. 게다가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이 과학기술의 시대에도 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폭발적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는 점을 단순한 흑백논리를 배제한 채로 잘 그려냈다. 여러모로 AI 시대에 대한 사고실험이자 반면교사로 손색이 없다.

찬호께이는 작년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홍콩의 미스터리 작가이다. 숙달된 미스터리 스릴러의 감각에 SF를 결합시켜 공동 저자인 미스터 펫과 함께 멋진 칵테일을 빚어냈다. 중화권 SF의 최전선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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