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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 오늘… 루마니아 24년 독재정권 무너지다

[역사 속 오늘] 차우셰스쿠, 북한식 독재정권 계획하다 시민 저항에 철권통치 종식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입력 : 2016.1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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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사진 제공=위키피디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사진 제공=위키피디아

27년 전 오늘… 루마니아 24년 독재정권 무너지다
"너희들은 다 반역자들이다."

벽을 보고 돌아선 70대 노부부는 끝까지 당당했다. 죄가 없음을 끝까지 주장하며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즐겨부른 '인터내셔널'을 부르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수십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 노부부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24년간 한 나라를 집어삼켰던 독재자는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27년 전 오늘(1987년 12월22일) 루마니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가 끝났다. 그의 24년간 독재가 무너지면서 루마니아 시민들은 자유를 쟁취했다.

차우셰스쿠는 1918년 1월 루마니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공산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공산당 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강제수용소에서 또다시 수감생활을 하던 중 그의 운명을 바꿀 한 남자를 만난다. 철도원 출신 공산주의 운동가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였다.

게오르기우데지의 심복이 된 차우셰스쿠는 그와 함께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소비에트연방의 영향권에 들어온 루마니아에 공산당을 세웠다. '개국공신'이 된 차우셰스쿠는 게오르기우데지의 영향 아래 공산당의 요직을 두루 꿰찼다.

1965년 내내 서열 2위였던 차우셰스쿠에게도 기회가 온다. 게오르기우데지가 사망하자 차우셰스쿠는 그의 지위를 승계해 공산당 지도자가 됐다. 동시에 국가원수로도 거듭났다.

그가 처음부터 루마니아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소비에트연방의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서방국가들과 관계를 확대하면서 지지를 받았다. 그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등을 포함해 서방국가의 지도자들을 만나며 경제 지원도 받았다. 산유국인 루마니아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차 지도자가 아닌 독재자의 길을 택한다. 도청장치를 국가 주요 기관은 물론 가정집에도 설치해 체제를 비판할 경우 가차없이 처벌했다. 군 통제권을 포함한 다양한 요직을 자신에게 집중시켰고 이도 모자라 가족들도 하나둘씩 국가 요직에 앉혀 '가족정치'를 시작했다. 세쿠리타테라는 자신만의 친위조직을 만들어 정규군 대신 이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기도 했다.

김일성을 만나고 있는 차우셰스쿠. /사진제공=위키피디아
김일성을 만나고 있는 차우셰스쿠. /사진제공=위키피디아

차우셰스쿠에게 독재의 영감을 준 인물은 북한의 김일성이었다. 그는 1971년 북한 방문 당시 김일성이 우상화된 모습에 크게 감동받는다. 귀국 후 김일성의 정책을 본떠 우상화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생가를 성지순례해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어버이 수령'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그의 노력이 루마니아 국민들에게는 잘 먹히질 않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왕국이 붕괴된 후 민주주의를 맛봤던 시민들이 그의 우상화 작업에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시민들의 저항으로 이어졌다. 시민들이 반정부운동을 감행했고 이때마다 그의 친위부대인 세쿠리타테를 출동시켜 이들을 막아냈다. 많은 시민이 희생됐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거세졌다.

결국 시민들이 폭발한 것은 1989년 12월21일. 차우셰스쿠가 국민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연설을 감행한 때였다. 그의 지지자들로 동원집회를 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가 연설을 시작하자 야유를 보냈다. 이들을 진압하라고 보낸 정규군들도 시민들의 편에 서서 차우셰스쿠에게 대항했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도망을 감행한다. 그들의 도피처는 북한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그의 도피를 돕기 싫었던 군인들과 시민들이 결국 이들의 도피를 방해하고 한 농가에 감금했다.

나흘 뒤인 크리스마스날, 이들은 재판에 넘겨졌고 '초스피드'로 군사재판이 열린다. 차우셰스쿠를 변호했던 변호사조차 이들에게 비난을 가했다. 결국 총살형이 내려졌고 같은 날 집행됐다. 그의 죽음은 루마니아 전역에 생중계됐다. 24년의 독재를 끝낸 시민들은 환호했다.

그가 죽은 지 1년 뒤인 1990년 루마니아는 처음으로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했다. 공산당에 대한 사회의 적대감은 커져 한때 불법으로 규정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철회됐다.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일부 세력은 여전히 지하세계에서 차우셰스쿠 세력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미영
이미영 mylee@mt.co.kr

겉과 속이 다름을 밝히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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