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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아이를 가진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줄리아 투자노트]

줄리아 투자노트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입력 : 2016.12.24 07:36|조회 : 1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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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이 잘못 됐다. 세상에 못난 아이는 없다. 아이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그럼에도 세상의 평균적인 시선은 물론 부모의 눈에도 못나 보이는 아이가 있게 마련이다. 나의 중학교 3학년 아들도 보기에 잘난 아들은 아니니 못난 아들에 가깝다고 할까.

아들이 중학교 입학 후 잦은 지각과 복장 불량, 태도 불량으로 벌점이 압도적인 전교 1등에 올라 매 학기마다 선도위원회에 불려 가야 했다. 그간 터진 복장으로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기고도 남았을 법하다. 동네 PC방을 뛰어다니며 아들을 찾아다니기도 백번은 될거다.

가장 무섭다는 중딩 2학년이 끝났을 땐 아들이 좀 변할까 기대도 했다. 좀 변하긴 했다. 학칙 위반과 게임을 넘어 머리에 염색을 하고 술과 담배를 시도하며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게 변했다. 그런데 중딩 아들을 3년 견뎌내며 진짜 변한 게 있으니 아들을 포함한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다.

못난 아이를 가진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달여전 아들이 감기를 심하게 앓아 결석을 했다. 문제는 열이 떨어지고 기침이 잦아들었는데도 아파서 학교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지각이나 조퇴는 할지언정 등교 거부는 한 적이 없었던 터라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겼나 걱정이 됐다. 3일째 되는 날 미적거리는 아들에게 꼭 학교에 가라고 신신당부하고 출근했다. 그날 아침, 학교에서 자주 받는 익숙한 문자가 떴다. “ooo 학생에게 출결관련 내용으로 벌점부여.” 한 마디로 지각해서 벌점 받았다는 거다. 평소 같으면 속에서 열불이 났겠지만 그날은 마치 출석 확인 문자 같아서 오히려 ‘학교는 갔구나’ 안심이 되고 감사가 됐다.

그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것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의 조언으로 아들과 함께 온가족이 청소년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 때다’ 싶어 아들의 문제점을 모두, 세세하게 고발했다. 상담 선생님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그래도 학교는 다니잖아요. 집은 안 나가잖아요. 신체적으로 문제 없잖아요. 요즘 중딩 남자애들 게임에 안 빠진 애가 어딨어요. 자기 하고 싶은거 하고 부모 말 좀 안 듣는거, 이제 자라서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으로 좀 봐주세요.” 역시 전문가라고 상담 전문가가 말하니 아들이 이만큼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도 감사한 느낌이었다.

둘째, 조금 겸손해졌다. 동네 엄마 모임을 가든, 동창 모임을 가든 아이가 주요 화제다. 정말 신기한 것이 남편 자랑은 거의 대화에 오르지 않고 자식 자랑이 최대 화제가 된다는 점이다. 그 때마다 나는 입이 다물어진다. 그간 아들이 말썽을 피울 때마다 수많은 악담을 퍼부었는데 워스트5 중 하나가 “너는 어쩜 그렇게 남 앞에 자랑할 게 없니”다. 어떤 모임에서 남의 자식 자랑을 실컷 듣고 온 뒤였다.

이제는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자랑거리가 아들에게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하다. 잘난 아들이었으면 내 성격상 남들 앞에서 얼마나 자랑질을 하며 남들 마음에 생채기를 냈을까. 못난 아들 덕분에 잘난 사람, 잘 나가는 사람은 스스로 큰 잘못을 하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가진게 많을수록,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잘났을수록 자신이 누리는 혜택이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겸손해져야 함을 알게 됐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바뀌길 기다려선 절대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기하게도 아들이 학교에서 벌점을 덜 받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어떤 행동은 더 나빠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아들이 중3이 되면서 관계가 좋아지고 내 마음은 평안을 찾았다. 아들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해서였다.

아들이 미적거리며 게임 하다 학교에 늦어도, 학칙을 어겨 학교에서 전화가 와도, 친구들과 어울리다 늦게 들어와도, 밤새 게임을 해도 긴 인생의 16살 한 때를 보내는 것이고 다양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살아갈 것이라 믿으니 예전처럼 애를 태우며 속을 썩이지 않게 됐다.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늘 상대방이 문제고 상대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못난 아들 덕분에 바뀌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 시선과 태도가 바뀔 때 비로소 상대방도 바뀜을 알게 됐다. 여전히 표준적인 시각에선 문제 많은 아들이지만 내 시선이 따뜻하게 바뀌면서 아들과 대화가 트이고 관계가 좋아졌다. 그게 2016년 나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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