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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오늘… 민주화의 대부 잠들다

[역사 속 오늘]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별세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입력 : 2016.12.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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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정과 운구행렬.  /사진=홍봉진기자honggga@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정과 운구행렬. /사진=홍봉진기자honggga@

5년 전 오늘… 민주화의 대부 잠들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블로그에 남긴 마지막 글)

2011년 10월 당시 미국에선 월가 시위가 한창이었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직접적인 행동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자신의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하나 올렸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는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이듬해인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새해가 오기도 전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해 12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본인 SNS에 "김근태 선배님이 위독하다십니다. 오늘이 고비일 듯하답니다. 슬프네요. 여러분도 같이 기도해 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김 전 고문이 뇌정맥혈전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는데 상태가 악화된 것이었다.

병원을 찾은 각계 인사들은 다들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의 얼굴에는 '민주화의 대부'인 김 전 고문의 인생과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듯했다.

1965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 김 전 고문은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2년 뒤에는 상과대학 대의원회 의장으로서 제6대 대통령 부정 선거 규탄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붙잡혀 제적당했다. 이후 강제로 군에 입대해 만기 제대한 그는 학교에 복학, 그 뒤로도 학생운동을 계속했다.

김 전 고문은 1971년 서울대 내란 음모 사건으로, 1975년에는 긴급조치 9호(헌법 비방이나 반대, 유언비어 유포, 허가 없는 학생시위·집회 금지 등) 위반으로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7년 넘게 은신하며 재야에서 활동했다. 이때 인천 부평 봉제공장에서 위장취업을 하고 있던 인재근 여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를 만났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1980년대에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단체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 최초 의장을 역임했다. 이 단체에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문학진 전 민주당 의원, 강창일 의원 등이 소속돼 있었다.

김 전 고문은 민청련 결성을 이유로 1985년 다시 구속됐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그는 '고문기술자'로 유명한 이근안씨를 만나 갖은 전기 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이때의 고문 후유증은 그의 남은 평생을 괴롭혔다.

아내 인 의원은 당시 고문 사실을 미국 언론과 인권단체에 폭로해 전세계에 진상을 알렸고 이를 계기로 부부 공동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일 함부르크재단은 김 전 고문을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하기도 했다.

출소 후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을 주도해 정책기획실장과 집행위원장을 맡아 노태우 정권에 맞섰다. 결국 노태우 정권도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1990년 5월부터 1992년 8월까지 감옥생활을 했다.

이후 김 전 고문은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한 그는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서 연달아 세 차례 당선됐다. 2002년에는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노무현 당시 후보에 힘을 실어주며 중도 사퇴했다.

참여정부에선 보건복지부장관으로서 영리병원을 반대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2008년에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이후 통합민주당과 민주통합당의 상임고문을 지냈다.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 그는 2007년부터 파킨슨병 확진을 받고 조용히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2011년 12월 30일 뇌정맥혈전증에 합병증인 패혈증까지 겹치면서 향년 64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진경진
진경진 jk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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