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해지에 계약금도 축소… 한미약품 '5조 당뇨신약' 중대고비

한미약품 (315,000원 ▲500 +0.16%)이 지난해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당뇨신약 '퀀텀 프로젝트'가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

3개 신약 가운데 하나는 계약이 해지됐고 또 다른 하나는 계약금의 절반 가까이가 감액됐다. 남은 하나도 임상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가 일부 삭감됐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이 사노피와 체결한 기술수출 총액 5조원 가운데 1조2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한미약품은 29일 주 1회 투여 제형으로 개발 중인 '지속형 인슐린(LAPSInsulin115)'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고 밝혔다. 계약 해지로 한미약품은 사노피에 오는 2018년까지 당초 받았던 계약금 4억유로(약 5000억원) 가운데 1억9600만유로(약 2500억원)을 반납해야 한다.

◇당뇨 신약물질 개발 차질…1조원 이상 손실 발생 = 퀀텀 프로젝트는 △주 1회 제형인 지속형 인슐린 △지속형 GLP-1 계열의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 △지속형 인슐린과 에페글레아타이드가 결합한 '지속형 인슐린 콤보' 등 3개 신약 후보 물질로 구성됐다.

사노피는 지속형 인슐린 계약을 해지하면서 동시에 지속형 인슐린 콤보도 한미약품이 일정 기간 개발하면 사노피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계약 내용을 바꿨다. 에페글레나타이드 마일스톤도 줄이고 개발 비용 일부를 한미약품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 같은 계약 변경으로 한미약품은 개발 성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받게 되는 전체 마일스톤 규모가 35억유로(약 4조4100억원)에서 27억2000만유로(약 3조4100억원)로 7억8000만유로(약 1조원) 줄었다. 반환해야 하는 계약금 1억9600만유로(약 2500억원)까지 합치면 한미약품의 손실액은 총 1조2500억여원에 달한다.

한미약품은 9월 말에도 다국적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3세대 표적 항암제 '올무티닙' 기술수출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이 지난 2년간 체결한 9조원 가량의 신약 기술수출액 가운데 2조원을 받지 못하거나 반납해야 할 상황이다.

◇사노피 계약 변경 이유는…바이오의약품 개발경험 부족? = 한미약품은 사노피와의 계약 해지 및 조건 변경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급변하는 신약 트렌드와 한미약품의 바이오의약품 생산경험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개발한 지속형 인슐린은 투약 횟수를 줄여 편의성을 높였지만 최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인슐린이 개발되면서 시장전망을 어둡게 본 사노피가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한미약품이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시약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일정이 차질을 빚으면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인슐린 결합형 콤보 임상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화학 약품 개발·생산에 강점을 가진 한미약품은 에페플레나타이드와 같은 바이오의약품 개발에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성의약품과 달리 바이오의약품은 같은 조건에서 동시에 생산해도 품질이 균등하지 않을 위험이 상존한다.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신약개발이 뜻한 데로 모두 되는 건 아니고 특히 바이오의약품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히 동일한 품질의 약을 만들어내는 게 여간해선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약개발 성공 확률은 0.02%…"개발 실패도 자산"으로 봐야 = 선두주자인 한미약품이 잇따라 기술수출에 실패하면서 제약업계의 신약개발과 수출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지난해 8조원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쾌거로 제약업계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며 "일부 계약변경이 악재로 작용해 업계의 신약개발 노력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신약개발 성공 가능성이 0.02%에 불과한 만큼 실패 경험 자체가 제약사에는 큰 자산"이라며 "한미약품과 제약업계가 진일보하려면 실패를 오히려 격려하고 보상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