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지킴이' 대학생들…"묵묵히 지킬 겁니다"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철거 규탄 대학생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뉴시스

"저희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에요." (일본군 위안부 사죄 배상과 매국적 한·일 합의 폐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 대표인 최혜련씨)

지난 겨울 길바닥에서 칼바람을 견뎌낸 이들이 있다. 봄에는 마스크로도 막아지지 않는 황사와 싸웠고 여름에는 체온보다 뜨거운 폭염을 버텨냈다. 가을은 스치듯 지나갔다. 그렇게 1년, 다시 겨울을 맞았다. 지난 겨울과 달라진 건 바람을 막는 비닐을 설치한 것뿐이다. 그래도 이전보다 훨씬 지낼만하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사죄 배상과 매국적 한·일 합의 폐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이하 대학생 공동행동)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나선 대학생들로 구성됐다. 지난해 12월28일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를 주장하며 이곳에 자리를 편지도 벌써 364일째(29일 기준)다.

지난 29일 오전 소녀상을 지키던 대학생들을 소녀상 앞에서 만났다. 이들은 이날 부산 동구청이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한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손팻말을 든 대학생 20여명은 영하 5도, 찬 바람 부는 날씨에 잔뜩 몸을 움츠렸지만 표정만큼은 결연했다.

최혜련 대학생 공동행동 대표는 "소녀상은 단순 물건이 아닌 우리들의 의지"라며 "소녀상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30일 오전 10시, 대학생들이 서울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번엔 부산 동구청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은 사죄 입장을 표현하며 "소녀상 설치를 더이상 막지않고 여러분의 의지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의지가 전해진 듯 이날 낮 12시30분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다시 설치됐다. 이어 오후 6시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선 대학생들의 농성 1주년을 맞아 '소녀상 농성 1년 그리고 당신' 문화제가 열렸다.

옷과 목도리로 둘러져 있는 소녀상과 이를 지키는 대학생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대학생들은 지난해 12월30일부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농성을 시작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사항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의 적절한 해결'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소녀상이 강제 철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후 1년 동안 대학생들은 매일 24시간 돌아가며 이곳에서 소녀상을 지켰다. 대학생 공동 행동에 소속된 이가 아닌 이들도 소녀상 지키기에 참여했다. 최씨는 "1년간 너무 많은 친구들이 다녀가 숫자를 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사죄 배상과 매국적 한·일 합의 폐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 대표인 최혜련씨(22)가 29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모습. /사진=뉴시스

최씨도 소녀상을 지켜온 '수많은 대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최근 '대학생 공동행동' 대표를 맡고 활동에 더 앞장서게 됐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누군가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1970년대에도 앞에 섰던 분들이 있었던 것처럼 저도 이 시대에 필요하다면 나설 수 있다고 믿었죠."

물론 최씨 혼자의 힘으로 농성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쪼개 하루씩 참여하는 친구들부터 휴학을 해 줄곧 자리를 지키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강원, 충청, 대구, 광주 등의 지역에서 올라와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소녀상을 지키는 일이 지루해 보일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청춘의 방식'이 있다. "우리끼리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도 했어요. 때로는 노래를 부르며 춤도 췄고요. 민중가요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때는 강력한 가사에 힘을 얻기도 했죠."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다. 특히 지난 6월 30대 여성이 흉기로 소녀상을 공격한 '망치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다.

"밤새 농성장을 지키다 잠깐 집에 들렀을 때 사건이 벌어졌어요. 마침 여학생 한 명만 지키고 있었는데 정말 위험했죠. 소식 듣자마자 바로 소녀상으로 돌아왔어요. 만약 망치를 사람 쪽으로 휘둘렀으면…바로 앞에 경찰이 있었는데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최씨는 내년에도 이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다. "소녀상 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때까지, 한일 위안부 합의가 폐기될 때까지 농성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농성이 장기화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저희는 묵묵히 자리를 지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