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공장'의 시대, 갈림길에 선 한국 제조업

인류가 또 한 번의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혁명의 방향과 파급효과 등을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산업구조, 더 나아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4차 산업혁명' 얘기다.

인류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맞았다. 증기기관으로 촉발된 1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자체 근력이나 가축을 통해서만 해 왔던 노동과 이동의 범위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전기에 의한 2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전자 장치로 인해 대량 생산의 시대를 맞이하게 했다. 컴퓨터와 반도체를 앞세운 3차 산업혁명에서는 자동화가 이뤄졌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이 ICT(정보통신기술)와 더욱 유기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단순히 일이 편해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차원을 넘어선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 '생각하는 공장'…눈 앞에 다가선 1인 제조업 생태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제조업 지능화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이 접목되면서 공장 스스로 의사결정의 일부까지 맡을 수 있을 수준으로 똑똑해진다.
공정별 각각의 생산 라인에서는 시간, 온도 등 다양한 환경 조건과 이에 따른 생산량의 변화, 수율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로 시물레이션을 하면 새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돌려보지 않고서도 신제품 개발과 기존 제품 또는 공정의 개선이 가능하다.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이뤄진 대량 생산 체제가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예측된다. 3D 프린터 등의 기술은 고객 맞춤형의 다품종 소량 생산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해 줄 것이다. 대규모 부지와 고가의 장비 없이도 각 가정에서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1인 제조기업들이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와 생산 뿐 아니라 물류 등 산업 전반에서 변화가 관측된다.

지금까지는 제품을 해외에 팔려고 하면 자국에 공장을 지어 그 곳에서 물건을 만들어 배, 비행기 등으로 수출을 하거나, 아니면 물건을 팔 국가에 직접 공장을 건설해서 제품을 생산해야 했다.

하지만 3D 프린터는 출력할 수 있는 데이터만 전송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제품을 찍어낼 수 있다. 따라서 부피가 크고 무거운 제품을 직접 옮길 필요 없이 데이터만 주고 받는 것으로도 제품의 해외 판매가 가능해 수출의 개념도 달라지게 된다.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전통적인 직업들 중 상당수가 인공지능 등으로 대체되고, 동시에 새로운 직업이 창출됨에 따라 노동 환경에도 지속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이 인류를 평균적으로 훨씬 더 부유하게 만들 것으로 보지만, 제대로 된 정책이 없으면 불평등이 심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대응…날고 뛰는 해외 제조 강국, 기는 한국

이런 변화의 흐름에 가장 앞선 국가는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 독일이다.

독일은 2011년 국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는 '인더스트리 4.0'을 발표했다. 인더스트리 4.0은 정부와 함께 지멘스 등 독일의 선진기업들도 참여해 다양한 혁신을 시도한다.

미국 역시 2011년부터 스마트 제조에 관한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다양한 ICT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2015년 ICT를 기반으로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하고 '인터넷 플러스' 등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고, 일본도 2013년부터 경쟁력이 있는 로봇기술 등을 적극 활용하는 4차 산업혁명 대응 전략을 내놓았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 자율주행차, 경량 소재, 스마트시티, 정밀의료, 신약, 탄소자원화, 미세먼지 분야의 기술을 확보하는 9대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다양한 정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 실효성의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선정 분야와 타당성 등에 대해서는 4차 산업혁명을 잘 반영됐지만, 목표 설정 위주다보니 이전 정부에서 되풀이 된 '정책 입안-이행계획 미비-실행없이 표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한다.

때문에 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만큼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민간 자율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맡겨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신흥개발국의 단계에 있을 때는 정부 주도 방식이 유효했지만, 다양한 실험이 필요한 4차 산업혁명에선 규제 의존성향이 강한 정부 주도 방식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한국은 2000년대 후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발빠르게 ICT를 통한 제조업 고도화, 즉 지금의 4차 산업혁명과 맥을 같이 하는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부처 간 이해관계, 정권 교체 등으로 결국 성공을 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뒤쳐진 상황이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AI분야 최고기술자로 통하는 시러스 샤케리 AI브레인 최고 AI 설계 담당자는 "IBM, MS, 아마존 등의 미국 기업들이 현재 수준의 AI를 선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난 30년간 고객사로서 보잉,GM 등 민간 제조업기업들이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통한 축적 덕분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연방은 물론, 주정부가 어떤 역할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국가가 국가 단위의 일반적 AI를 개발하느라 독려하기 보다, 이미 공개된 글로벌 기업의 AI를 우선 활용하되 축적된 독특한 지식을 살려 강점있는 특정분야 AI를 민간이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제환경을 보살펴 주는 것이 유효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