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리서치센터의 굴욕…"돈 안되니 떠나라"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큰 활약을 한 건 알지만 회사에선 가성비를 못 맞춘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근 소속 증권사에서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는 경력 10년차 애널리스트가 담당 리서치 센터장에게 들었다는 말이다. 그와 함께 일한 리서치 어시스턴트(RA)도 이번에 함께 짐을 꾸리게 됐다.


한때 '증권사의 꽃'으로 불린 애널리스트들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최근 2~3년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연봉삭감은 물론 인원도 많이 줄었으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근에는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섹터는 모조리 잘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교보증권은 올 초 인사에서 자동차, 인터넷·게임, 스몰캡, 시황전략 등을 맡았던 애널리스트 4명을 내보냈다. 1명은 본사 기획부문으로 발령받았지만 나머지 3명은 영업점으로 이동했다.

후속 인사충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고급인력인 애널리스트를 조직 하단인 일선 영업점으로 배치한 것은 이들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보여주는 단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수익구조가 빡빡해지면서 비용만 나가는 리서치센터를 짐스러워하는 경영진이 많다"며 "적자를 내도 탄탄한 리서치능력을 자랑으로 여기던 과거와는 천양지판"이라고 말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출범한 KB증권(KB투자증권+현대증권), 미래에셋대우(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대우)에서도 리서치센터 인력은 눈칫밥을 먹는다.

통합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는 90여명으로 출범했는데, 합병 전 기준으로 150여명에 달하던 인력의 업무중복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애널리스트직을 내려놓게 된 이가 많다.

매크로, 시황분석 담당인력 10여명은 신성장 투자관련 부서로 이동했고 전공분야와 무관한 해외주식 분석을 맡게 된 이들도 상당하다.

KB증권 역시 통합출범 과정에서 적잖은 이가 퇴사했다. 이직을 택한 이들도 있으나 다른 곳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고민이다. NH투자증권 역시 "자리만 나오면 이직할 계획"이라고 털어놓는 애널리스트가 많다. 증권사를 떠나 상장기업으로 이직하는 이들이 급증한 배경이다.

이대우 아프리카TV IR팀장은 일찌감치 이직한 애널리스트 가운데 하나고 유안타증권에서도 지난해 스몰캡 팀장과 소속 애널리스트가 상장사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이동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3~4년 전만 해도 증권사 희망업무 1순위는 애널리스트였는데, 이제는 3~4위라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리서치센터에 지원하는 신입사원은 갈수록 줄고 외부충원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리서치센터의 위상추락은 근본적으로 증시 위축과 연관이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리서치센터의 경우 법인영업팀을 지원해 펀드를 운용하는 기관투자자 자금을 유치하는 역할이 컸다"며 "그러나 기관 매매주문이 급감하며 법인영업부 실적이 악화됐고, 그 화살이 리서치센터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 판매액은 2009년 1488조7102억원에 달했으나 이듬해 1228조5127억원으로 줄었고 이후에도 감소 추세가 이어져 지난해(11월까지)에는 586조763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펀드 유출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지수 중심의 벤치마크 투자에 주력하며 리서치센터의 역할이 더욱 축소됐다"며 "파생부문의 리서치 자료를 제공하지 않기로 하는 곳도 있는 등 돈 못 버는 리서치의 수난이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