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한번 안 준 이모와 조카… '진실공방' 예고

'국정농단' 파문의 장본인 최순실씨(왼쪽)와 그의 조카 장시호씨 /사진공동취재단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진 뒤 처음 법정에서 마주한 이모와 조카는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한때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던 둘의 관계는 최근 장시호씨(37)가 최순실씨(61)의 것이라며 제2의 태블릿PC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제출하며 완전히 틀어졌다. 장씨는 핵심 혐의를 인정한 반면 최씨는 모두 부인하거나 조카에게 떠넘겨 앞으로 재판에서 치열한 ‘진실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최씨와 장씨, 김 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56)은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진행된 첫 공판기일에 출석했다. 최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의 차림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피고인석에 앉은 뒤 변호인과 잠시 대화를 나눌 뿐 장씨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남색 코트를 입고 담담한 표정으로 등장한 장씨 역시 앞을 응시하다 재판이 시작된 뒤에는 최씨 자리 반대편인 재판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들은 김 전차관과 공모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전자가 16억2800만원을 후원하도록 압박한 혐의가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영재센터에 2억원을 지원하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와 별개로 장씨는 영재센터 자금 일부를 횡령한 혐의와 국가보조금을 부당하게 타낸 혐의가 있다. 김 전차관은 K스포츠재단 운영 등과 관련해 문체부 비공개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한 혐의도 받는다.


장씨는 국가보조금을 부당하게 타낸 혐의를 제외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최씨와 공모, 삼성그룹을 압박해 영재센터에 후원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씨의 변호인은 “은퇴한 선수들이 재능을 기부하고 이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해보겠다는 영재센터 취지에 공감을 해서 설립을 도왔을 뿐”이라며 센터 설립·운영과 후원 과정에 개입한 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최씨의 변호인은 또 증거로 채택된 영재센터 사무국장의 진술서를 근거로 “장씨가 영재센터의 실질적 오너였다”고 주장했다. 또 장씨가 설립한 회사 더스포츠엠 대표이사의 진술서를 제시하면서 “장씨가 영재센터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고 직원들이 장씨를 이사님이라고 불렀다”며 책임을 모두 떠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영재센터 설립 지시 및 대부분의 업무 지시 등 중요한 부분은 장씨 위에 최씨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증인신문 등을 통해 입증하겠다고 공언했다.


김 전차관은 무죄를 주장했다. 김 전차관의 변호인은 “삼성 측을 협박, 강요한 일이 없다”며 “삼성의 후원금은 청와대와 삼성 수뇌부가 직접 소통해 지원된 것임이 이미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5대 거점 체육인재육성사업’ 등 문건 유출 혐의에 대해서는 “최씨에게 건넨 문건은 비밀로 유지돼야 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관련 문건은 장씨의 영재센터 내 금고에서 발견됐고 장씨 필체로 ‘미스터 판다(김 전차관) 서류’라 기재된 파일철에 있었다. 검찰은 이날 장씨가 ‘대빵 드림’이라고 적어 보관하던 문건도 공개했다. ‘대빵’은 최씨를 가리킨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재판이 모두 끝난 뒤에도 최씨와 장씨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장씨는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검사들과 인사를 한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최씨는 장씨가 먼저 나간 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법정을 나섰다.

다음 재판은 오는 25일 오후 2시10분 열린다. 이날은 영재센터 후원금 지급에 관여한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 총괄사장과 이영국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