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美 170억$ 투자… 이미 '트럼프월드'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트럼프 정부 시대에 조기 진입한 모습이다.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발표된 미국 투자 계획만 170억달러에 이른다.


20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이후 지금까지 총 6개의 자동차 기업이 총 171억달러(20조1100억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기존에 폭스바겐이 세웠던 70억달러 투자는 제외된 금액이다.

연산 30만대 공장을 짓는데 보통 1조5000억원가량 들어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 시 연 300만대 규모의 차량을 더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설비 현대화와 고용, 연구개발 비용을 포함한 것이라 바로 증설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모두의 예상을 상회하는 규모다.

트럼프는 고용안정과 자국 산업 강화를 위해 관세 인상과 무역협정 파기 등을 무기로 자동차 기업을 압박 중이다. 특히 인접국인 멕시코에 투자 계획을 가진 기업을 직접 거론하며 투자 방향을 미국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일 트위터를 통해 "토요타가 멕시코에 미국 수출용 코롤라 공장을 짓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라며 "미국 공장을 짓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35%)를 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BMW에도 국경세 부과 압박을 가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서비스업이 중요하지만 국가 경제를 받치고 있는 것은 제조업이고, 그 중 자동차 산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며 "전·후방 산업의 고용 효과도 커 초반 압박이 가장 심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의 초반 압박에 이미 미국 기업인 포드와 GM, FCA(피아트-크라이슬러)는 멕시코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축소함과 동시에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토요타와 다임러는 각각 70억달러, 13억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도 향후 5년간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정진행 현대차 사장은 지난 17일 "친환경·자율주행차 등 신기술 R&D(연구·개발)투자 확대와 기존 생산시설 개선 투자 등을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5년간 미국에서 21억달러를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50% 가량 늘어난 규모다. 현대차그룹은 투자규모 증액이 트럼프 정부 출범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멕시코 국경세가 실현될 경우 지난해 준공된 멕시코 공장이 직격탄을 맞는다. 기아차는 멕시코 공장에서 'K3'를 생산해 북미로 수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업계는 미국의 자동차 시장이 정점(1755만대)을 찍은 상황에서 자동차 기업들의 미국 설비투자 강화는 수익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기업들이 추가 투자 계획은 밝히면서 증설에는 소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도 시장 환경에 따라 미국 공장을 신설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원론적인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전통적 에너지 산업을 중시하는 만큼 전기차 등 친환경차 시장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선제적 대응으로 신정부 출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