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부터 비서관까지 줄줄이 대포폰…이유 묻자 "북한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탄핵법정에서 박근혜 대통령부터 청와대 참모진까지 차명 휴대전화(대포폰)를 썼다는 증언이 나왔다. 박 대통령 등이 왜 주로 범죄에 이용되는 차명 기기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된 해명이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1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7회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온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48·구속기소)은 "박 대통령도 차명 휴대전화가 있었나"라고 묻자 잠시 머뭇대다 "네"라고 답했다.

다만 "대통령은 아마 드리는 대로 쓰셨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자신이 사용하는 전화기가 차명 휴대전화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란 취지로 얘기했다. 이 기기의 통신요금은 공식 보좌진들이 개인적으로 댔다고 한다.

이진성 재판관이 "박 대통령이 차명 휴대전화를 쓰는 것을 누가 아느냐"고 묻자 정 전 비서관은 "저와 안봉근, 이재만 비서관 정도"라고 말했다. 이 재판관이 "세 사람은 공식 보좌진이고 외부인사 중에 누가 아냐"고 추궁하자 "누가 알겠습니까. 특별히 잘 모른다"고 입을 다물었다.

정 전 비서관은 자신도 차명 휴대전화를 사용했으며 이 전화기로 최순실씨(61·구속기소)와 2013년 2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하루에 3번꼴로 연락했다고 밝혔다. 차명 휴대전화를 쓴 이유를 묻자 정 전 비서관은 "우리 정치의 나쁜 부분인데 이전 정권부터 쭉 도·감청 논란이 많이 있었다"며 "만일을 대비해 제 이름으로 된 기기를 쓰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일원 재판관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 등이 차명 휴대전화를 쓴 이유를 재차 묻자 정 전 비서관은 "사실 도·감청 이런 것보다는 북한도 있을 수 있고 여러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얼버무렸다.

이에 강 재판관이 "북한이 (도·감청을) 들어올 정도로 보안이 허술해서 되겠냐"고 지적하자 "그냥 보안 부분에 있어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관성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보안에 대한 막연한 우려 때문에 관행대로 차명 휴대전화를 썼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7회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날 김상률 전 교문수석비서관도 헌재에 증인으로 나와 차은택씨(48·구속기소)가 준 차명 휴대전화를 썼다고 털어놨다. 차씨는 김 전 수석의 조카로, 차씨가 최씨에게 청탁해 김 전 수석을 교문수석 자리에 앉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김 전 수석은 "2015년 3월 업무용 휴대폰을 사용하다 스미싱(스마트폰 문자메시지로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피싱 사기 수법)을 당해 국회에서 '청와대 보안이 뚫렸다'며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며 "차씨가 차명 휴대폰을 건네줘 (이 휴대폰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다 폐기했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이날 김 전 수석의 증언을 통해 그가 최씨와 차씨 밑에서 사실상 허수아비 노릇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김 전 수석은 K스포츠재단과 최씨 회사 더블루K가 개입된 '스포츠클럽 개편방안' 사업 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해본 적이 없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는 총 300억원대 지원금이 걸려있는 대규모 사업이다.

또 김 전 수석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노태강 전 국장과 진재수 전 과장을 사실상 퇴직시키라는 지시를 받고도 그 뜻을 몰랐다고 밝혔다. 노 전 국장과 진 전 과장은 승마협회 감사를 맡았다가 최씨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않아 박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재판관이 당시 박 대통령이 정확히 뭐라고 했느냐고 묻자 김 전 수석은 "적절한 시점에 승진시켜서 산하단체 임원직에 보임하게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 재판관이 "공무원에게 산하단체로 옮기라는 건 퇴직을 뜻하는 것도 몰랐나. 교문수석이 된 지 1년4개월이나 지난 뒤의 일인데도 몰랐나"라고 질책하자 김 전 수석은 "몰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