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 '동전 없는 사회'…현금도 사라질까

/사진=뉴스1

#2020년 편의점에서 700원짜리 캔커피를 산 A씨. 1000원짜리 지폐를 내놓은 뒤 거스름돈을 받으려 손을 내미는 대신 카드를 내민다. 편의점 직원은 카드를 교통카드 충전기에 올려놓고 300원을 충전해준다. 충전된 돈은 대중교통이나 편의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한다.

3년 뒤,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주고받는 모습이 어색해질지 모른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1일 '동전 없는 사회'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거스름돈을 동전으로 주는 대신 선불카드에 충전해 주는 방식으로 동전 사용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2017년 상반기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1단계로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을 선불카드에 충전해 주는 방식을 도입한다. 효과가 입증되면 2단계로 거스름돈을 개인 계좌에 직접 입금해주기로 했다. 업종도 편의점 외에 다양하게 늘릴 계획이다.

◇잘 쓰이지 않는데 발행 비용 500억원, 골칫거리 동전= 한은이 동전 없애기에 나선 이유는 동전 발행·유통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화폐제조비용 1503억원 가운데 주화(동전) 발행 비용이 537억원을 차지한다. 여기에 관리·유통 비용까지 더하면 동전 사용에 따른 비용은 더 늘어난다.

매년 동전 발행 비용이 500억원을 넘는 이유는 낮은 환수율 때문이다. 동전 사용이 불편하다보니 잘 쓰이지 않는다. 한은이 지난해 6~9월 전국 성인 2500명에게 물은 결과 '잔돈으로 동전을 받더라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답변이 46.9%,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62.7%가 '소지 불편'을 꼽았다.

이런 탓에 동전이 집에만 쌓이고 한은으로 돌아오지 않아 새로 발행할 수밖에 없다. 2016년 한해동안 동전 912억7100만원이 발행되고 147억4400만원이 환수돼 연간 환수율은 16.15%에 그쳤다. 반면 5만원권 등 지폐의 연간 환수율은 50%가 넘는다.

시행을 위한 여건도 무르익었다는 평가다. 이미 2015년 전체 지급수단 중 신용카드(40.7%), 체크·직불카드(14.8%) 등 비현금 결제수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기준으로 71%. 현금은 29%에 불과하다.

물론 동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전 없는 사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당장 동전 발행을 중단하거나 줄이지는 않는다. 김정혁 한은 금융결제국 전자금융기획팀 팀장은 "동전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전자 지급결제 수단을 활용해 동전 사용을 줄여보자는 의도"라며 "동전 수요가 충분히 줄어들었다고 판단되면 발행량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웨덴·벨기에는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카드 등 전자 결제 수단이 현금을 대체하는 것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이미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은 동전 없는 사회를 넘어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이달 1일부터 동전과 지폐의 직접 생산을 중단했다. 필요한 화폐 물량은 다른 나라에서 위탁 생산한다. 자국의 화폐 생산을 다른 나라에 맡겨도 될만큼 현금 사용이 적다. 2016년에는 상점 주인들이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안도 제출됐다.

스웨덴은 2007년부터 대중교통 이용시 현금 사용을 금지했다. 성당과 교회에서는 카드로 헌금을 받는다. 현금 없는 은행도 늘고 있다. 대형은행 6곳 중 5곳이 주요 지점의 80%를 무현금 점포로 운영한다. 2013년에는 스톡홀름 은행에서 강도가 은행에 돈이 없어 아무것도 훔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많은 나라들이 현금을 없애는 이유는 화폐 발행 비용을 절감하고, 강도나 소매치기 등의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지하경제 양성화도 장점으로 꼽힌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현금결제 비중이 50% 이하인 국가의 지하경제 규모는 평균 12%, 현금결제 비중이 80% 이상인 국가는 지하경제 규모가 32%에 달했다.

이 밖에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아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도 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유럽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 처방을 썼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에서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오히려 보관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예금자들은 인출해서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돈이 돌지 않는다면 마이너스 금리 통화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반면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통화정책의 효과가 즉각 반영된다.

◇우리나라도 '현금 없는 사회' 될까= 한은은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곧바로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아직은 여건이 덜 성숙한 듯하다"고 답한 바 있다. 동전 사용부터 줄여나간 뒤 현금 없는 사회의 도입 가능성을 따져보겠다는 계획이다. 김정혁 팀장은 "2020년까지 시범 사업 후 현금 없는 사회로 갈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장기적으로는 현금 없는 사회에 가까워질 것으로 본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미 현금 사용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사람들이 현금 없는 세상에 익숙해진다면 일부 국가들처럼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현금 사용 중단을 선택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빅브라더 시대' 경고도= 한편 현금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우선 보안 문제가 대두된다. 소매치기는 사라져도 해킹과 정보유출 등 신종 사이버 범죄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 취약계층 문제도 지적된다. 저소득층과 노년층 등 취약계층이 금융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정유신 교수는 "현금이 사라진다는 것은 신용도가 낮은 개인과 기업은 거래 자체가 제약될 수 있다는 이야기"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의 통제력이 막강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현금 없는 사회는 곧 현금이 데이터로 대체되는 것을 뜻한다. 금융 당국이 개인과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의 거래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금융 빅브라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메간 매카들 블룸버그뷰 칼럼니스트는 한 칼럼에서 "현금 없는 사회로 가고 싶다면, 정부가 시민의 행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결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