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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준비는 초등 4학년부터 시작" 미친 선행학습

[소프트 랜딩]입시 서열구조를 깨뜨리는 과감한 교육개혁이 없다면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입력 : 2017.02.10 06:00|조회 : 1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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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입을 준비해야 합니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해 말 서울 대치동과 목동 등 사교육 과열지구에 있는 주요 13개 학원이 정규교육과정보다 평균 3.8년 앞선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6학년이 중학교 3학년 과정을 선행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치동의 일부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에게 고교 2학년 과정인 미적분을 풀게 하고, 강남의 어학원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학에 필요한 공인영어시험인 토플(TOEFL)을 가르치고 있다.

학부모들이 이렇게 초등학교부터 선행학습에 매달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선행학습을 해야 중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특수고, 특목고에 진학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명문대 진학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대입을 준비해도 늦는다"는 말이 나도는 게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다.

더욱이 학원들은 아이들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명문대에 갈 수 없다는 '불안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남들보다 한발 먼저 시작해야" 한다며 각종 통계자료와 함께 선행학습의 당위성과 효율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웬만한 학부모들은 학원의 마케팅 공세를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이 와중에 강북에 사는 필자의 지인인 40대 직장인 B씨는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를 태권도 학원 1개만 보내고 있다. 그리고 부족한 학교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학습지 1개는 시키고 있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보드게임을 즐기며, 책도 읽어주면서 저녁 시간을 보낸다.

B씨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이유는 초등학교 교과목은 굳이 선행학습이 필요 없다는 개인적 소신 때문이다. 그런 B씨는 강남 학부모들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아이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학부모나 다름없다.

분당에 사는 또 다른 지인인 50대 직장인 L씨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사교육을 안 시키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더라"며 영수 학원 2~3개를 보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L씨는 "분당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학원 2~3개만 보내는 것은 거의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초등학생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쓰는 학부모와 성적을 위해 온종일 학원으로 아이를 내모는 학부모 가운데 누가 진정 자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많은 학부모들은 지나친 선행학습을 해서라도 자식을 명문 대학에만 보낼 수 있다면 자식 교육을 잘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초등학생 자녀들은 자녀대로 스트레스에 고통스러워하고, 부모들은 부모 대로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고 한숨이 는다.

한창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이 학원과 독서실에 갇혀 자정이 넘어서까지 중고생 수학 문제집을 풀며, 대학수업 내용에나 나올 법한 고급 단어까지 달달 외워 토플 점수를 따려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엄마들이 가장 부러워한다는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이다.

이같은 과도한 선행학습의 부작용은 이미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 A군은 가출을 한 뒤 무작정 부산으로 왔고, 부모님의 신고로 사용 정지된 신용카드로 택시요금을 결제하려다 결국 경찰서에 인도됐다. 경찰 조사에서 A군은 "학원을 6곳이나 다니는 게 싫었고, 수학 숙제를 안 해서 가출했어요"라고 말했다.

정규 과정 학습도 쉽지 않은 초등학교 6학년이 학원을 6군데나 다니며 상급학교의 몇 년 치 과정을 미리 선행학습을 했으니, 그 어린 초등학생이 가진 학업에 대한 막중한 부담은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탈출을 선택할 만큼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부에서는 교육현장에서의 지나친 선행학습을 규제하기 위해 2014년 9월부터 정규 교과 과정을 미리 가르치거나 그 범위를 벗어난 내용을 시험에 출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선행학습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 정규 과정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다 보니 '풍선효과'로 인해 선행학습을 원하는 수요는 온통 학원으로 몰려들게 됐다. 결국,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선행학습을 금지한 법이 학원의 선행학습만 키운 왜곡된 결과를 낳은 셈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이 내려질 경우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대선 후보들이 다양한 교육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상급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서열화된 입시구조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광기(狂氣)에 가까운 선행학습 경쟁을 도무지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만약 올해에도 과감한 교육개혁이 없다면 내년에 아이가 초등 4학년이 되는 B씨는 그동안의 소신을 접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어 대입 준비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성근
최성근 skchoi77@mt.co.kr

국내외 경제 현안에 대한 심도깊은 분석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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