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쏘아올린 공' 격변하는 통상질서 속 韓

임종철 디자이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 국제 통상질서의 균열이 현실화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고립·보호주의 행보를 보이며 우리나라를 둘러싼 통상·무역 환경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모양새다.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응할 수 있는 각각의 전략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가장 큰 위협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공식 테이블에 오르는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한·미 FTA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표출해왔다. 한국과의 FTA를 ‘일자리 킬러’(Job Killer)로 규정한 게 대표적이다.

한·미 FTA의 재협상이 이뤄지면 피해는 상당할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으로 양허 정지가 이뤄질 경우 2021년까지 향후 5년간 총수출손실 269억달러, 일자리손실 24만개, 생산유발손실 68조원 등을 예상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직접 한·미 FTA 재협상을 언급한 적이 없는 만큼, 이를 자극하기 보다는 판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우선해야 한다는 스탠스다. 더 많은 압박을 받는 일본, 중국, 멕시코 등과의 협상을 지켜보고 이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운다는 구상이다.

일각에서 제기한 셰일오일·가스, 항공기 수입 등을 통한 이익균형 조정도 하나의 대안이다. 다만 정부는 협상 카드의 패를 미리 상대에 보여줄 필요는 없다며 공식적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국경조정세(BAT)도 걱정이다. 법인세를 매길 때 수입품에 20%의 세금을 물리고, 수출품엔 면세 혜택을 주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수출 촉진, 수입 억제’ 효과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휴대폰, 가전 등 주요 미국 수출품목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소프트시그널’을 빨리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며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 미국도 강경하게 나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을 지렛대로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활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폐기 순서에 들어간 상황에서, 세계 교역의 약 30%를 차지하는 RCEP의 급부상은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스럽다.

대미 무역 의존도를 줄이고 통상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타결된 한·중미 FTA는 재협상이 유력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충격을 완화해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상반기 중 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와의 FTA 협상을 개시하고, 한·이스라엘 FTA 타결을 서두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최근 통상환경의 변화에 대해 산업계·학계 등과 함께 다양한 분야별로 모니터링 해,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마련해가고 있다”며 “우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기 때문에, 보호무역 확산에도 자유무역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기회 요인을 만들어야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