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안진 헤어질까…'영업정지' 회계법인 결말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에 대한 금융당국 제재 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딜로이트안진의 앞날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과거 사례를 보면 영업정지를 받았던 대형 회계법인들이 폐업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4대 회계법인으로 꼽히는 딜로이트가 안진과의 제휴관계를 중단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업계 2위 안진이 위기를 맞으면서 회계업계 '빅4' 체제가 개편될 전망이다.


20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과거 대표적 '영업정지' 사례로 지난 2000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당시 외부감사인을 맡았던 산동회계법인이 꼽힌다. 당시 업계 3위였던 산동은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외부감사를 맡았는데 소속 회계사 50여 명이 분식회계를 묵인·방조한 혐의로 1년간 영업정지를 당했고, 끝내 폐업했다.

◇영업정지 당한 산동·청운·화인, 모두 '폐업'=1999년에도 청운회계법인이 대우통신 부실감사로 1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문을 닫았고, 2009년에는 화인경영회계법인이 케이디세코 분식회계를 방조한 혐의로 6개월 영업정지를 받은 뒤 폐업했다. 세 곳 모두 소속 회계사들이 떠난 뒤 '회계감사 불능'을 선언, 자진 폐업하는 절차를 밟았다.

해외에서는 2002년 미국 엔론 사태로 폐업한 아더 앤더슨, 2015년 일본 도시바 분식회계에 연루됐던 언스트앤영이 유사한 사례다. 2002년 당시 세계 5위 회계·컨설팅 기업이었던 아더 앤더슨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고객사들의 탈출과 채권단 소송이 잇따라 파산했다. 그러나 2005년 미국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아더 앤더슨에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회사가 문을 닫은지 3년 후였다.

도시바 분식회계 당시 외부감사인이었던 언스트앤영은 영업정지에도 생존한 사례다. 일본 감독당국이 내린 영업정지 기간이 1~3월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감사 대상 기업과의 재계약 시점인 4월 이전이었던 탓에 회사 존립을 흔드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 같은 전례를 감안해 '산동회계법인 보다 죄질이 가벼운 만큼 언스트앤영처럼 회사 존립 기반 보장을 위해 제재를 늦춰달라'는 게 안진의 바람이다.

◇3개월 이상 영업정지 '유력'…딜로이트-안진, 헤어질까=안진의 기대와 달리 업계에선 4월 이전에 '3개월 이상, 신규 감사계약 등 일부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딜로이트와 안진의 제휴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안진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면 딜로이트가 제휴를 중단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안진은 '빅4' 지위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은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가 필수다. 제휴가 끊기면 감사보고서의 '권위'가 추락하기 때문이다. 외국계 회사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 기업에게도 외면을 받게 된다.

실제로 과거 KPMG는 제휴 중이던 산동회계법인이 영업정지를 당하자, 산동과의 제휴를 해지하고 삼정회계법인과 제휴를 맺었다. KPMG삼정이 안진과 업계 2위를 다투는 '빅4'로 진입한 계기다.

딜로이트안진은 징계 여부와 관계없이 제휴가 어이질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말 딜로이트의 로저 다슨 부회장이 금융감독원을 방문,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징계 관련 의견을 나눴을 때도 "딜로이트안진의 감사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면서 제휴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영업정지가 현실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안진의 회계사 유출이 가속화돼 회사가 쪼그라들면 제휴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 딜로이트는 매년 안진 수익의 일부를 라이선스 비용 형태로 받는 만큼 영업정지는 딜로이트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에선 딜로이트가 안진과 제휴를 해지할 경우 국내 다른 회계법인과 제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과거 삼일·안건·산동·영화·안진 등 '빅5', 현재 삼일·안진·삼정·한영 등 '빅4'는 모두 글로벌 회계법인과 제휴를 체결했다"면서 "딜로이트의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이 낮은 만큼, 어떤 형태로든 회계시장 '빅4'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