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국부펀드, 9년 만에 2조 원금회복 눈앞에둬

KIC(한국투자공사)가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투자했던 2조원의 원금 회복을 눈앞에 뒀다. 지난 9년간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손실을 뚝심으로 버텨낸 결과다. 그럼에도 9년간 기회비용을 고려할 경우 국부펀드의 투자 판단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IC가 2008년 1월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를 투자한 메릴린치의 지분가치가 투자원금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투자 당시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 원금 대부분을 날릴 뻔했지만 9년을 참고 기다린 끝에 기사회생했다.

메릴린치는 금융위기 때 유동성 악화에 시달리며 파산설이 나올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BoA(뱅크오브아메리카)에 합병됐지만, BoA 주가 역시 급락해 한때 투자원금의 90% 이상 손실이 발생했다.

국부펀드가 2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투자 손실을 초래하자 책임론이 불거졌고 급기야 2014년 당시 KIC 사장이 '메릴린치 투자 실패를 인정한다'며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상황은 2014년부터 극적 반전을 맞았다. 2009년 3달러 수준까지 떨어진 BoA 주가가 2014년 17달러까지 반등했다. 이때 투자원금의 절반 이상을 회복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BoA를 비롯한 미국 금융회사 주가가 급등해 KIC를 웃음 짓게 했다. 15달러 안팎에서 지지부진하던 BoA 주가는 트럼프 당선 후 25달러까지 뛰었다. 이달 17일 종가 기준 BoA 주가는 24.52달러다.


KIC는 개별 투자 사례에 대해 수익률을 공개하지 않지만 지난해 8월 말 기준 메릴린치 보유지분의 순자산가치 평가액은 11억3000만달러까지 회복했다. 투자 후 받은 배당금 등을 반영한 연환산수익률은 -5.41%다.

지난해 8월 후 BoA 주가가 현재까지 약 45% 상승한 만큼 KIC의 메릴린치 보유지분 평가액은 약 17억2000만달러까지 상승했다. 현재 KIC의 메릴린치 투자원금은 18억9000만달러로 장부가 기준 -10% 수준까지 회복했다.

BoA의 향후 전망이 밝다는 점을 감안하면 KIC 메릴린치 투자 수익률이 플러스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BoA는 지난해 179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 최근 10년간 최대치를 달성했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인상이 예상되는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규제 완화 정책이 지속될 전망이어서 BoA 주가가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KIC 관계자는 "개별 투자 건에 대해 구체적인 수익률을 공개할 수 없지만 BoA 주가 상승으로 대규모 투자손실이 상당부분 정상화됐다"며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규제완화 정책이 본격화하면 미국 금융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KIC의 메릴린치 투자가 대규모 손실 구간이었을 때 공사 안팎에서 지금이라도 손절매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며 "당시 기재부와 KIC가 많은 고민 끝에 BoA 지분 보유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손실을 확정 처리하는 게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보유' 결정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지만 국부펀드의 투자 전략에 아쉬운 점이 있던 건 분명하다"며 "첫 투자가 잘못돼 9년이나 다른 곳에 투자하지 못하고 끌려왔다는 점을 감안해 향후 대규모 투자시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