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답아니다", 예산편성권 국회 이관주장에 정부 반격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야권 중심으로 행정부 소관인 예산 편성권을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정부 측 반격이 처음 나왔다. 행정부가 과도하게 재정권한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고, 주요국 역시 예산편성권이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예산 편성권을 놓고 행정부와 입법부 간 물밑 싸움이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은 21일 세종시 조세재정연구원 별관에서 '2017 재정전문가 네트워크 성과확산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토론 테이블엔 최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가 논의에 착수한 예산편성권 국회 이관 문제가 논의됐다. 국책연구원인 조세재정연구원의 주장은 사실상 정부의 입장으로 해석된다.

헌법 54조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 예산안을 편성하고 국회는 이를 심의·확정한다. 헌법 57조는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증액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예산에 대한 국회 권한을 감액으로 한정하고 정부도 국회 통제를 받도록 한 것이다. 행정부와 입법부 간 '견제와 감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취지다.

발표자로 나선 김종면 조세재정연 아태재정협력센터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주요국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과 비교했을 때 미국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의 예산 편성권이 정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제 국가만 놓고 보더라도 의회의 재정 권한이 강한 미국 사례가 예외적인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대통령제의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 재정권한이 행정부에 편중됐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고 정부의 예산 증액동의권은 오히려 취약한 편"이라며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의 대표 사례로 제도를 참조하기엔 심각한 '예외의 일반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중권 중앙대 교수 역시 행정부 측 논리에 힘을 보탰다. 김 교수는 "예산을 가장 많이 투입하는 행정부가 편성 주도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회가 편성권을 가져갔을 때 정부에게 예산 집행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지 의문이고 국회 예산 처리가 만성적으로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박인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영국 학자인 벤허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의 의회 재정권한을 측정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2.5점으로 순위가 낮았다"며 "2012년 OECD 예산제도 조사를 봐도 예산에 대한 국회 권한은 다른 나라보다 적다"고 김 센터장 주장을 반박했다.

이번 논의와 관련,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다소 조심스런 입장이다. 송언석 기재부 2차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예산편성권 이관 문제와 관련해 정부 입장은 최종 정리되지 않았다"며 "개헌이 진행된다면 정부 의견도 적절한 기회에 제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차관 발언은 국회 개헌특위 논의가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논란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신 행정부가 입법부와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나서기보다 물 밑에서 방어 논리를 쌓는 모습이 감지된다. 이날 조세재정연이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 점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조규홍 기재부 재정관리관은 이날 "헌법을 만든 제헌국회는 재정권한을 국가 기관 간에 분립시켜 권한 집중을 방지하고자 했다"며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하고자 한 취지가 몇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둘러 현행 체제 유지 입장을 밝힌 것이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정부는 예산 편성 주체일 수 밖에 없는데 다만 정부 행위가 잘못됐을 경우 국민에게 끼치는 손해를 어떻게 상쇄시킬 지가 중요하다"며 "정부가 세부 예산안을 편성하기 전 차년도 예산 방향에 대해 국회와 의논하는 방안, 국민의 예산통제 방안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