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망해도 '파트너'는 산다…'상후하박' 고질병 앓는 회계사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딜로이트안진의 출구전략에 회계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징계를 피하는 게 최선이지만, 만에 하나 업무정지가 현실화된다면 폐업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안진 인력들이 새로운 브랜드로 '갈아타기'한 뒤 딜로이트와의 제휴를 유지할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또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회사 지분을 보유한 '파트너급' 회계사들의 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2일 안진 내부사정에 밝은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안진 지분을 보유한 파트너 회계사들은 만일 업무정지를 받아 폐업 수순을 밟게 될 경우, 지분 가치가 훼손된다"며 "이직이 비교적 자유로운 젊은 회계사들과 파트너 회계사들의 징계에 대한 위기감이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이직이 활발한 회계업계지만 회사 지분을 보유한 '파트너' 회계사들은 일선에서 실무를 책임지는 회계사들과는 금융당국 징계에 대한 체감도가 다르다. '빅4' 회계법인에서 파트너가 되면 소속 법인의 지분을 매입하며, 퇴직하면 보유 지분을 회사에 되판다. 회계법인은 대부분 비상장 유한회사라 주가 변동 손익은 없지만 '폐업' 위기에 몰리면 "전세금을 떼이는 세입자 신세"가 된다.

◇안진, 삼정 전례 따를 가능성…"파트너급 단체 '이직' 움직임"=폐업이 현실화돼도 파트너급 회계사들의 지위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계업계에선 안진이 KPMG삼정 전례를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업계 3위였던 산동회계법인은 2000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으로 업무정지를 당한 뒤 폐업했다. 그러나 폐업 전 주요 인력이 대거 삼정으로 이동했고, 산동과 제휴했던 KPMG도 삼정과 제휴했다. 김교태 현 삼정 대표 역시 산동 출신이다.

이에 안진의 주요 구성원들이 새 법인을 만들고 딜로이트와 제휴를 맺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안진은 올 상반기에 감사와 비감사 부문을 분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분리된 감사 부문이 폐업한 뒤, 비감사 부문과 갈아탄 회계법인이 통합한다면 파트너들도 현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업권 내 영향력은 딜로이트와 제휴에 성공할 경우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안진 내부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 안진 회계사는 "몇몇 파트너들을 중심으로 자신과 함께 타 회계법인으로 이동할 의사가 있는 회계사를 모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안진과 인적교류가 활발했던 A회계법인이 후보로 거론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주니어들은 이미 파트너로부터 이동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합집산'에도 지위 유지하는 파트너들…주니어는 '막막'=업계에선 업무정지 징계가 현실화되면,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파트너급보다는 주니어 회계사들이라고 지적했다. '이합집산' 과정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주니어 회계사들은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업계의 이직이 아무리 활발해도 단기간에 다수 인력이 시장에 쏟아지면 마땅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 특히 정식 회계사 자격증을 발부받지 못한 주니어 회계사들은 신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파트너급 회계사로의 성장 사다리는 끊어졌다는 탄식이 업계에 팽배하다. '빅4' 회계법인의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파트너급 회계사는 총 463명으로 전체 회계사(5035명)의 9.1%에 불과하다.

특히 지분이 있어야 배당으로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라 파트너 회계사가 되지 못한 경우, 업무 강도에 비해 보수가 낮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저연차 회계사들은 과실을 파트너들이 독식하는 반면 감사 책임은 직접 감사업무를 담당하는 일선 회계사들이 진다는 불만이 많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