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가계부채 총량 너무 많다… 취약계층 부실 우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br>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역대 최대치로 불어난 가계부채 문제에 상당한 우려를 내비쳤다. 특히 135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 총량이 "너무 많다"는 견해를 밝혔다. 취약계층 부채 부실화 가능성에 대한 '경고음'도 보냈다.

이 총재는 23일 2월 금통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계부채 문제는 가볍게 볼 수 없다"며 "거시경제 관점에서 봐도 가계부채 총량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가계 금융자산과 금융부채 현황을 볼 때 채무 상환능력은 전반적으로 양호하다"라던지, "가계부채 질적인 측면은 개선됐다"는 평가를 하면서 '가계부채 위기설'을 진정시려는 의도의 발언을 주로 했었다.

그러나 공식 브리핑이 아닌 한은 로비에서 기자들과 격식 없이 나눈 대화에서는 이와 달리 상당한 위기감을 드러낸 셈이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위험성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가계부채 문제를 우리 경제 시스템리스크로 생각하지 말자는 뜻이었다"며 "기본적으로 취약가구 (가계부채 부실화) 문제는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올해 시장금리 상승압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 저신용자, 다중채무자 등 취약차주 부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의해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다만 일각에서 제기된 '4월 위기설'과 관련해선 "과장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상환 부담 등을 거론하면서 (4월 위기설)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이런 이슈들은 이미 알려진 리스크로 정부, 관계기관들이 적극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위기로 전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향후 회사채 시장에 문제가 생긴다면 한은이 지난 2008년 실시한 채권시장안정화펀드 등 대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총재는 최근 경제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 속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는 상황)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2%대 중반 성장세, 물가안정목표제(2%) 수준인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 총재는 또 미국 재무부가 4월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예상했다.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에 따른 국내 경제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대미 수출 감소로 중국 성장세가 둔화가 예상된다”며 “중국과 높은 실물 교역 관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위안화 동조 현상으로 원화 환율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날 향후 통화정책 방향성을 직접적으로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체로 함구했다. 금통위 금리동결 결정이 시장금리, 물가, 가계부채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 경제 성장세가 완만하고 수요 측면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 총재는 국내 경기 판단에 대해선 “1월 전망(2.5%)에 대체로 부합하는 흐름”이라면서 “심리위축으로 소비는 전망보다 다소 떨어지겠지만 수출은 예상보다 개선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한은은 이날 개최된 2월 금통위에서 1.25%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은 지난해 6월 금리인하 이후 8개월째 동결기조를 이어갔다. 이번에도 7인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결론이 났다.

이일형·조동철·고승범·신인석 금통위원이 합류한 지난해 5월 이후 금통위는 10회 금리결정(금리인하 1회, 금리동결 9회)을 했다. 이 기간 소수의견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