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를 치료하는 협진체제, 읍면동 복지허브화

머니투데이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옆집에 나이가 많고 몸도 불편한 어르신이 산다.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가 쌓여있다. 자녀들이 찾아오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이웃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혼 후 아이 다섯을 혼자 키운다. 아이들은 수시로 아프고 생활비마저 곧 떨어질 형편이다. 내 사정이 이렇다면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까? 해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읍면동 주민센터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부터 읍면동 주민센터의 복지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제도를 아는 사람만 지원받을 수 있었던 ‘창구형 복지’에서 복지 공무원들이 어려운 이웃을 직접 방문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찾아가는 복지’로 완전히 바꾼 것이다. 본격적으로 읍면동 복지허브화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방문한 가구 수는 총 106만여 가구에 이른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차상위 계층 지원제도 등의 국가가 해주는 지원에 대해 잘 몰랐던 국민 25만 명이 새로 지원을 받았다. 민간에서도 도움을 줘 복지관과 봉사단체, 기업에선 후원금과 물품을 기꺼이 내줬고, 개인들도 의료 및 교육, 청소 등의 재능기부를 해 주는 등 총 62만 건, 223억원 상당의 물적·인적자원을 했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지내던 92세 어르신에게는 주민센터의 공무원이 찾아가 기초생활수급비와 지역사회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청소봉사단체에선 집을 깨끗이 치워줬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타인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던 어르신은 이제 경로당에서 친구도 사귄다고 한다. 주민센터 공무원과 복지관이 힘을 합쳐 이뤄낸 결과다. 이후 자신도 다른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며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4년 2월 세 모녀가 큰딸의 만성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전 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송파 세모녀 사건’이 있은 지 3년이 지났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복지지원제도, 건강보험제도 등 현행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동시에 기존의 복지 패러다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바로 지난해 첫 삽을 뜬 읍면동 복지허브화 사업이다.

읍면동이 지역복지의 중심기관이 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요청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찾아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주민들을 먼저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와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 및 민간의 여러 자원을 발굴하고 연계하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3502개 읍면동 주민센터 중 2016년 한 해에만 30%인 1094개가 복지허브로 거듭났다. 올해 말까지 전체의 64%인 2246개 읍면동으로, 2018년엔 전체 읍면동 주민센터로 복지허브화를 확산할 계획이다. 몇몇 선도적인 복지허브 지역엔 외국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직접 찾아오고 있다. 복지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수한 전달체계를 대한민국이 종주국으로서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에는 협의진료라는 시스템이 있다.

환자 한 명에게 급성질환과 알러지, 당뇨병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여러 전문분야의 의사가 다각도로 접근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말한다. 실제로 협진을 통해 폐암환자의 생존율을 2배 이상 높이는 등 효과성도 검증됐다. 읍면동 복지허브화는 복지 분야의 협의진료다. 시·군·구청 및 읍·면·동 주민센터의 공무원 뿐만 아니라 보건소·건강보험공단 같은 공공기관의 전문가, 복지관이나 아동센터 등의 임상심리 담당자 및 사례관리자, 그리고 지역 주민이 서로 협력하면서 복지 대상자 개개인에게 꼭 맞는 복지 서비스를 주고 있다.

읍면동 복지허브화 도입 이전에는 각 기관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복지서비스가 제공돼 같은 서비스를 중복 제공하거나 꼭 필요한 서비스가 누락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읍면동 복지허브화를 통해 앞으로는 개인 맞춤형으로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때 받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다. 정부와 민간이 손을 맞잡아 추진하는 읍면동 복지허브화 사업이 앞으로도 전국 방방곡곡에 확산되어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삶에 다시 희망을 채워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