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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한국사회를 얼려버린 동결사건

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입력 : 2017.03.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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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만약 그때 그랬다면’이라는 미련을 가진다.

‘만약 그랬다면’이라는 ‘대안 역사’를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 자주 예로 드는 것이 미국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머리 겔만이 소개한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다.(이 에피소드는 에릭 바인하커의 '부의 기원'이라는 책이 출처다)

이 쇼에 나오는 애니 오클리(본명 피비 앤 모시스)는 1860년 오하이오 윌로우델에서 태어난 여성이다. 타고난 사격솜씨로 어떤 물건이든 잘 맞춰 전세계를 상대로 순회공연하는 그녀는 남편 프랭크 버틀러와 함께 와일드 웨스트 쇼에 참가하게 된다.

쇼의 긴장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마지막 이벤트로 관객 중 한명이 나와 입에 담배를 물고 있으면 애니가 총으로 이 담배만 맞히는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한 이 쇼의 마지막에 자원할 사람이 없어 항상 관객석엔 남편인 버틀러가 관객처럼 있다가 자원해 총구 앞에 서곤 했다. 1890년 유럽 순회공연 중 어느 날도 같은 쇼를 진행하고 있는데, 남편보다 먼저 손을 들고 자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훗날 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황제가 된 빌헤름 황태자다. 그 때 빌헤름이 애니의 실수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도, 그로 인해 2150여만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또 1차 세계 대전 패배 후 독재자 히틀러도, 러시아에서 레닌이라는 인물도 등장하지 않았고, 전세계 냉전도 없었을 것이다.

애니와 빌헤름의 만남을 머리 겔만 박사는 동결사건(Frozen Accident: 하잘 것 없이 보이고 우연한 일이지만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건)이라고 불렀다.
동결사건이라는 용어는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영국의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의 1968년 연구에서 유래됐다.

유전암호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연한 사고(accident)처럼 발생했지만, 그 상태로 확고하게 고정된(frozen) 유전자는 그 이후 식물과 동물 등의 모든 진화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동결사건은 2014년 11월 한 일간지의 ‘정윤회(최순실의 전 남편) 문건 유출’ 사건이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내부문건 유출로 알려진 ‘비선실세’ 문제는 그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이 사건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동결사건’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 다음부터 벌어진 각종 국정농단 논란 때문이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2014년 12월), 삼성의 최순실-정유라 모녀 승마지원(2015년 7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2015년 8월), 미르재단(2015년 10월 27일)과 K스포츠재단(2016년 1월 18일)의 강제모금 등이 2014년 11월 이후의 일이다.

그 때 제대로만 조사됐다면, 최순실은 삼성에 자신의 딸 승마를 지원하라고 압박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출연금을 강요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기업들로부터 두 재단에 강제로 출연금을 내라고 힘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각에선 기업이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동결사건의 구조는 권력의 힘과 서열 관계에서 밀린 기업의 불가피한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쉬운 예가 최근 불거진 롯데의 사드 사태다.

민간기업 롯데의 골프장을 사드부지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국방부는 합의했다고 하지만, 롯데 입장에서는 사실상 강제수용과 다름없다. 중국의 보복이 두렵지만 정부가 요구하니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롯데의 처지다.

삼성이나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이런 동결사건의 시작을 바로 잡아야 한다.
오동희 산업1부장
오동희 산업1부장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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