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앉아서 먹고 일하세요?…'스탠딩족'이 뜬다

/사진= 인스타그램 minbal0427, 뉴스1, 칠포재즈페스티벌 인스타그램.

#직장인 A씨는 출근길 지하철역 앞 노점상에서 간단히 컵밥을 먹고 회사로 향한다. 바쁜 아침 짧은 시간에 허기를 달래기엔 제격이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스탠딩데스크에 놓인 서류 뭉치들이 눈에 띈다. 허리 디스크가 심했던 A씨지만, 서서 일하면서 점차 증상이 완화되고 있다. 점심 시간엔 가끔 회사 앞의 서서 먹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는다. 맛도 있지만 값이 저렴해 즐겨찾는다. 식사 후엔 동료들과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해 주변을 산책한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와 콘서트에 갈 예정이다. 일찌감치 스탠딩 좌석을 예매했다. 공연장에서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책상 앞에서 공부나 일을 하는 일상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넣고 뻣뻣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옛말. 두 다리를 쭉 펴고 가볍에 몸을 풀며 일을 하고, 테이블 앞에 서서 밥을 먹는 스탠딩족이 늘고 있다.

약 41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스타그램 스타 엘렌 로라(좌측). 그는 친구들과 한국을 찾아 '컵 스테이크'를 즐겼다. /사진=엘렌 인스타그램

◇스테이크까지? 서서먹는 음식 인기…짧은 시간 저렴하게 ‘가성비’ ↑
홍대·대학로·이태원 등 젊은층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에는 모두 컵 스테이크 식당이 있다.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던 스테이크를 먹기 편하게 컵에 담아 파는 곳들로, 컵 밑에는 콜라나 맥주 등 음료가 담겨있다. 가격은 6500~8000원선.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최소 3만원은 내야하는 일반 레스토랑보다 훨씬 저렴하다. 의자가 필요없어 좁은 공간에서도 영업할 수 있기 때문에 임대료 부담이 적어 음식값을 낮출 수 있다.

컵 스테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식당 관계자는 “컵 스테이크는 고객 편의성과 저렴한 가격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매장 밖으로 갖고 나가 이동하며 먹기에도 편하고 주변 경치 좋은 곳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면 소풍 온 느낌을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서 먹는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 '오레노'. O'live의 2015 테이스티로드에도 방영된 적 있다. /사진=테이스티로드 방송분 캡처.

일본의 유명 레스토랑 브랜드 오레노(Oreno)는 최근 이태원과 강남에 국내 1·2호점을 열었다. 오레노는 최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서서 먹는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 ‘고급 음식을 합리적 가격에 맛 볼 수 있다’는 가치를 내세웠다.


다른 레스토랑에서 10만원이 넘는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오레노에서는 1만~2만원에 맛볼 수 있다. 이태원 오레노의 경우 구운 연어를 올린 크림파스타를 8900원에, 구운 랍스터 한 마리를 1만8900원에 먹을 수 있다. 서서 음식을 먹기 때문에 고객 회전율도 높다.

서서 먹는 음식이 인기를 끄는 것은 짧은 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편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 가성비가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4.4로, 소비자심리지수가 3개월 연속 95를 밑돈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권이었던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불황에 선뜻 지갑을 열기 힘든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가성비 좋은 메뉴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할 때도 공부할 때도 '서서'… 건강·집중력↑

국내 IoT 디바이스 제조 브랜드 ‘게이즈랩(GAZE LAB)’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게이즈 데스크(GAZE DESK) /사진=뉴스1

서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서서 일하는 방식은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면서 해외에서 확산됐다. 일찌감치 덴마크는 2001년부터 모든 사업장에서 고용주들이 서서 일하는 환경을 제공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서서 일하면 한 곳에 앉아서 일할 때 직원들이 얻게 되는 각종 '사무병'을 최소화하고 집중력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도봉구가 척추질환을 앓는 직원을 위해 시범 도입한 스탠딩데스크.(도봉구 제공)/사진=뉴스1

건강에도 좋고, 집중도 잘돼 일석이조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국내 기업이나 기관들도 사무실 풍경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중구는 허리 질환을 앓는 직원들을 위해 일어나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데스크를 확대 보급한다고 밝혔다. 도봉구·성동구 등도 서서 일하는 책상을 보급했다. 경기 의왕시 내손도서관은 지난해 7월, 스탠딩 책상을 설치해 이용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회사에서 스탠딩책상을 쓰고 있는 회사원 최기원씨(38)는 "회사에 오랜시간 앉아있다 보면 허리 통증도 있고 집중이 잘 안될 때가 있었다"며 "하지만 스탠딩책상을 쓰면서 앉거나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몸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능동적·멀티태스킹 세대…"공연도 서서 즐겨요"

/사진=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공식 인스타그램.

과거의 콘서트·공연장들엔 의자가 놓여있었다. 무대 위 배우·가수와 무대 아래 관객이 양분돼 관객은 무대를 쳐다보며 수동적으로만 공연을 관람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종 콘서트에서 스탠딩석부터 매진된다. 대중 본인이 직접 무대의 주인공들처럼 서서 소통하고 춤과 노래를 과감하게 즐긴다.

대학생 한지연씨(23)는 "앉아있을 때처럼 반드시 한 곳에만 집중해야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스탠딩 공연을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양한 일상생활이나 대중문화를 서서 즐기면 보다 능동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며 "스탠딩 문화는 밥을 먹으면서 음악을 듣고 게임도 하는 젊은 세대들의 멀티태스킹 욕구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