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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권한대행, 안토니우스식 화법으로 '통합의 탄핵'

[뉴스&팩트]'탄핵 인용' 과정 살펴보니, 2000년 전 시저 암살 두고 벌인 논리 화법의 재연

뉴스&팩트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7.03.11 11:18|조회 : 1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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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사진=뉴스1<br />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사진=뉴스1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기까지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 ‘잘못 없음’의 분위기로 번져 ‘기각’으로 결론 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판사의 판결은 흔히 판결문 시작에서 모든 게 결정된다는 ‘묘한 법칙’이 있다. 이를테면 옹호의 발언으로 시작하면, ‘그러나~’를 거쳐 결국 ‘이에 ~한다’는 식으로 죗값을 묻고, 부정의 발언으로 시작하면 결론은 그 반대인 식이다.

이를 적용하면 이 권한대행이 박 전 대통령의 여러 문제에 책임이 없는 것처럼 선고를 시작했을 때, 결론은 “인용일 것”이라는 오랜 법칙의 습관에 기대려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면책’에 대한 선고 부분이 길어지면서 “혹시”하는 반전이 나올 수 있는 예상외 카드로 당혹감도 적지 않았다.

이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는 2000년 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살해를 두고 연단에서 벌어진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논리 흐름을 보듯 긴장감이 역력했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브루투스는 시저를 살해한 뒤 광장에 모인 시민을 향해 살해의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의 설득력 있는 논리로 단숨에 시민을 제압한다.

“여러분은 시저가 죽고 만인이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 시저가 살고 만인이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가 용감하였기에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시저가 야심가였기에 난 그를 죽였습니다.”

시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브루투스 만세, 만세”를 외쳤고, 상황은 암살자를 두둔하는 분위기로 바뀌는 듯했다. 브루투스로부터 추도사를 읊을 마지막 기회를 얻은 안토니우스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시저를 무작정 옹호하거나 브루투스와 정반대 논리로 정면 승부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되레 브루투스를 옹호하는 것으로 논리를 시작했다. 암살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성을 “그럴 수 있다”는 논리로 내세운 뒤 조금씩 브루투스의 약점을 옥죄는 식이었다.

“난 시저를 장사지내러 온 것이지, 칭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고결한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에 불탔다고 말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확실히 슬픈 결점이며 가슴 아프게도 시저는 그 값을 치렀오. 시저는 많은 포로들을 로마에 데려왔고, 포로들의 몸값은 모두 국고에 들여놓았오. 어찌 이것이 시저의 야심이란 말이오. 여러분은 한때 시저를 분명 사랑했오. 그런데 왜 그를 애도하길 꺼리는 겁니까.”

시민들이 안토니우스에게 결국 마음을 돌린 건 적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대표해 안토니우스 화법을 그대로 따라 썼다.

이 대행은 우선 ‘공무원 임명권 남용의 침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이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김기춘의 지시로 1급 공무원 6명의 사직서를 제출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사건의 증거를 종합할 때 최서원(최순실)의 사익추구와 김기춘의 지시 이유가 불분명”하다고 선고했다.

‘언론 자유 침해’와 ‘세월호 사건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 의무’와 관련해서도 이 대행은 주체의 이유와 배경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성실’에 대해선 이 정의가 추상적이고 상대적이어서 탄핵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적시했다.

‘태극기 집회’를 상징하는 이들을 안도시키는 선고가 끝나자마자, 이 대행은 ‘최서원의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에 대해선 ‘그러나~’로 시작하는 논리로 확실한 매듭을 지었다.

최씨의 사적 이익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내용을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봤고, 이것이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 따져봤을 때,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파면으로 얻는 이익이 크다는 점을 명시했다. 재판관 전원 일치로 선고된 주문은 명확했다.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한다’.

안토니우스는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를 향해 원색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적의 논리를 수용하고 감정보다 이성에 근거한 대응으로 가장 확실한 ‘통합의 복수’를 이뤄냈다.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 진영으로 갈라설뻔한 로마 시민을 하나로 모으는 대통합의 기술을 구사하면서 자연스러운 복수를 단행한 것이다.

이 대행의 대응도 비슷했다. ‘기각’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의 합당한 논리를 내세우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의 원칙에선 ‘인용’의 편에 선 사람들의 손을 들어줬다.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국민 대통합을 기초로 한다. 죄에 대한 이성적 잣대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모으는 감성의 통합이 이 기관의 역할이자 숙명이다. 8명 재판관의 만장일치 의견이 나온 것도 소수 기권 의견이 가질 분열의 씨앗을 원천 차단하는 데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세계 역사에서 얻은 지혜의 산물일지 모른다. 통합은 그렇게 시작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로마 시대 안토니우스의 길거리 추도사가 21세기 고귀한 법정에서 ‘통합의 탄핵’이라는 이름으로 재연됐다.

이정미 권한대행, 안토니우스식 화법으로 '통합의 탄핵'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3월 10일 (19:20)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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