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호무역 수위 낮추나…"백악관 '內戰'서 월가 승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두 정상은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AFPBBNews=뉴스1

미국 백악관에서 무역정책을 놓고 '내전'(civil war)이 발발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내전에서는 월가 출신 온건파가 승기를 잡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 수위를 낮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신문은 전했다.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강경 보호무역주의자와 월가 출신의 온건 자유무역주의자들은 최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무역정책을 놓고 격렬한 회의(fiery meeting)를 했다.

이 회의에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와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강경론을, 골드만삭스 출신의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은 온건론을 주장했다.

회의는 이번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미와 다음주 독일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입장 정리를 하는 자리였다. 이 회의에서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은 나바로 위원장으로 그는 최근 독일이 유로화 저평가를 통해 유럽의 다른 나라와 미국 등 무역상대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식통들은 나바로 위원장이 최근 이같은 강경 발언으로 안팎에서 반발을 사며 영향력이 약해진 것 같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나바로를 비롯한 보호무역주의자들의 편을 드는 모양새를 취했다고 전했다.

FT는 무역정책을 둘러싼 다툼이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갈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콘 위원장을 비롯한 온건파는 나바로의 강경발언을 빌미로 그를 몰아내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NTC를 백악관에서 분리해 역시 월가 출신인 윌버 로스가 이끄는 상무부 산하로 옮기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나바로 위원장은 공화당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지만 지난달 상원의원들과 비공개 회의에서 트럼프의 무역정책을 논의할 때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아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백악관 소식통들은 나바로 위원장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콘 위원장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관련 논의에서도 돋보이는 움직임을 보였다. 루이스 비데가레이 멕시코 외무장관은 지난 9일 콘 위원장을 비롯한 백악관 관리들과 회동한 뒤에 협상을 신속히 진행해 올해 말까지 끝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는 NAFTA 재협상을 내년까지 끌고 가는 한이 있어도 심층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해온 로스 장관의 입장과 상반된 것이다.

나바로로 대표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경파들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예상했던 것보다 온건한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최대 노동조합인 AFL-CIO의 무역 책임자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지명한 제조업 자문위원회의 일원인 시어 리는 트럼프 행정부 내 월가 출신 베테랑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이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 하다며 현재로선 월가 출신들이 승기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가 출신들은 무역정책의 현상유지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