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과학 훈포장 기관장 셀프추천 논란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은 ‘상(賞)’에 대한 철학이 남달랐다. 얼마 전 만난 홍 차관은 “시무식 때 수여하는 우수·모범공무원 포상에 ‘이 사람이 왜 이 상을 받게 됐나’를 상세히 기록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부터 해왔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상패에 ‘귀하는 뛰어난 기량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라는 관행적인 문구 대신 ‘나수상 국장이 추진한 A프로젝트는 B분야 산업에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고(중략) 이런 이유로 이 상을 수상한다’는 식으로 넣자는 것이다. 수상자의 업무와 관련 성과를 상세히 기록해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부여하자는 취지가 녹아있다. 그날 홍 차관과 함께한 사람들은 꽤 괜찮은 생각 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 여파로 정국이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연구소 분위기를 다잡아야 할 책무를 지닌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장 중 일부가 대통령 훈포장 후보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른바 ‘셀프 추천’ 논란이다.

이맘 때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의 날(4월21일)을 맞아 대통령·국무총리 훈포장 후보자 검토에 들어간다. 당장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라 행사를 제대로 치룰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 속에 올해는 예기치 못한 후보자 난립으로 미래부의 고심이 더 커지고 있다. 후보에 출연연 전·현직 기관장 이름이 다수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중엔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은 기관장, 자의적인 업무 추진으로 임기도 제대로 못 채우고 물러난 전 기관장, 현재 원장 권한 대행 중인 부원장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천 후보자 취합을 맡고 있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기관장 추천은 현재 제도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관 내부에서 볼 때 대통령·국무총리 타이틀을 단 과학기술인 훈포장에 기관장이 추천될 경우 내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나아가 연구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미래부 측도 “이런 선례가 없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과학의날 훈포장은 연구소 한 켠에서 묵묵히 한우물 연구로 업적을 쌓은 선배 연구자의 공적을 높게 평가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선정 기준은 특출난 성과보단 성실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사 때 가점이나 상금 등의 인센티브 등 특별한 부상이 따르진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훈포장을 받았을 때 가슴 벅찬 희열과 뭉클한 애국심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기관장도 퇴임 후 특별한 공로가 인정될 경우 마땅히 수상 자격을 줘야한다. 하지만 현재 재임 중이라 상하관계에 얽매여 마땅히 받아야 할 다른 과학자들의 수상 기회를 뺏거나, 일부 자격이 미흡한 후보자들이 받는 건 곤란하다. 향후 기관장들의 ‘나눠먹기식’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런 상황이 그날 홍 차관의 제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만일 그렇게 바뀐다면 그 상패에 진심을 담은 자기 이야기를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